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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상처 보듬은 ‘효녀심청’ 마음 울리던 ‘생일없는 소년’

[김명환 선생의 전통가요 이야기]
원로가수 김용만 히트 노래
6·25전쟁 치르고 혼란의 시기
시대상 담긴 노래에 위로 받아
연극·영화 본 관객 ‘울음바다’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5년 03월 17일 화요일 제12면     승인시간 : 2015년 03월 16일 20시 52분
이 두 제목의 노래 중 '효녀심청'은 1954년도에 발표됐고 '생일 없는 소년'은 1958년도에 발표된 노래다. 김용만 씨가 불러서 대히트를 했다. 당시 우리사회는 6·25전쟁을 치른 후여서 여러모로 혼란 속에 빠져 있을 때다.

사회의 무질서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져 세상은 암울하게 돌아갔다. 더구나 전쟁의 폐허와 상처는 여기저기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라도 하듯 효녀심청이란 노래가 탄생하여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국민들은 시대상을 노래한 이 노래를 간절히 사랑했고 온몸으로 받아주었다. 각박한 세상에 던져주는 '효녀'의 이야기는 대단한 이야깃거리이자 화제였다.

가수 김용만은 이 노래를 불러 스타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그 후 '생일 없는 소년' 역시 6·25전쟁이 만든 비극이다. 부모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어린것들만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생일인들 어찌 알 수가 있었으랴. 이 또한 시대의 비극을 노래로써 우리들의 마음을 많이 울려줬던 노래다. 특히 구두닦이 소년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슬퍼하며 울었겠는가.

'심청전' 또는 '생일 없는 소년' 등은 연극과 영화로서 극장 안이 온통 관객들의 울음바다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이는 극장에서 나오면서 눈이 퉁퉁 부어 있기도 했다.

김용만은 '남원의 애수'로 데뷔하여 50년대 60년대에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여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낸 가수로도 널리 알려진 가수이기도 하며 지금도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쉴 새 없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한국가요작가협회 작사·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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