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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늘 언어에 배고프다 … 술없이 취할수 있는 게 문학의 맛 아닌가”

[나재필의 feel]'시대의 대문호' 고은 시인
17살에 무작정 나섰다가 스님생활
시인 안됐다면 장례사 됐을 거야 …
노벨상 소회없는데 언론서 법석
연작시집 만인보 30권 4001편 잉태
감옥살때 국어사전 씹으며 달달 외워
40년넘게 일기쓰며 시간의 파편 기록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2015년 03월 04일 수요일 제8면     승인시간 : 2015년 03월 03일 18시 39분
▲ 고은 시인은 23년에 걸쳐 세계문학사상 최대의 기획이라고 찬사를 듣는 연작시집 만인보 30권 4001편을 썼다. 그는 찾고 또 찾아도 늘 언어에 배고프다고 말했다.
벼린 펜끝, 벼린 가슴이 시(詩)에 녹는다. 그 문자의 묵직함은 단연코 세상을 울린다. 그리고 묻는다. 왜 고은 시인이 한국문단을 넘어 지구촌의 문웅(文雄)이어야만 하는지를….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고은(83) 시인과의 인터뷰는 바람 좋은 날, 김완하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와의 선문답(禪問答) 중 이뤄졌다. 김 교수는 고은 시인의 수제자다.

고은 시인은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자락에 산다. 광교산은 고려 고승 진각국사 혜심과 현오국사의 얼이 서려있는 곳이다. 30년간 안성에 둥지를 틀고 현대문학사에 거대 족적(足跡)을 남긴 후 2년 전 수원으로 이주했다.

-시인이 된 계기는.

"한국전쟁의 참혹상에 충격을 받고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10년 넘게 지독한 불면증을 앓았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던 17살, 무작정 한 스님을 따라나섰고 이후 10여년을 불교에 귀의했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조지훈 선생의 천거와 미당 선생의 단회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인이 아니었다면 무엇이 됐을까.

"아마도 장례 지내는 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난) 무덤을 참 좋아했다. 고향 군산부터 통영, 제주도 어디든 공동묘지는 단골집이었다. 제주도 사라봉 무덤은 그 숫자까지 꿰고 있다. 새 무덤이 오면 톡톡 다독거려주고 무덤 옆에 누워 잤다. 그냥 편안했다. 사람들이 귀신 들렸다고 했을 정도다."

-시인에게서 넘치는 흥(興)은 도대체 어디서 발원하는 것인가.

"난 술로도 취하지만 술 없이도 취할 수 있다. 땅이 춤을 추는 걸 형상화한 한자가 바로 흥(興)이다. 나 또한 이 땅,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일부로 구성된 존재인데 자연히 지신의 취기가 나에게 올라와서 술을 안마셔도 취흥이 난다."

그는 이를 두고 오르가슴(高揚) 상태라고 했다. 수많은 시들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뜬눈으로 그 시들을 받아들인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술꾼인가.

"술꾼인 것은 사실이다. 1983년 감옥에서 나왔을 때 너무 힘들어 술을 다시 시작했다. 폭음을 시작하니 몸이 망가지고 주변 사람들도 떨어져 나가더라. 이때 리영희 교수(행동하는 지식인 표상)와 자주 어울려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곯아 떨어져 자다보니 옆에 리 교수도 있었다. 의형제까지 맺었다. 하하."

-아마도 10월이 되면 가장 난감한 예술인 중 한명이 되곤 한다. (사실) 노벨상 거론이 지겹거나 섭섭하지 않은가.

“난 가만히 있는데, 10년 넘게 세상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한다. 언론에서는 불발, 고배, 아쉬움 등의 기사가 실린다. 하지만 노벨상에 대한 내 소회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시로 쓴 민족의 호적부, 만인보(萬人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 연작시집은 20세기 세계문학사상 최대의 기획이란 찬사를 듣는다. 쓰게 된 사연이 있나.

“1980년 대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서 지냈던 경험이 만인보의 씨앗이다. 그 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밖에 나가면 세상사람 하나하나의 시를 써야겠다고 구상했다.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났던 인간 군상들을 연작으로 다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30권 4001편이 잉태됐다."

-무려 23년 만에 탈고했다. 느낌이 어땠나.

"아, 끝냈구나 싶어 몸이 가벼웠다. 하지만 세상과 약속한 만인보는 끝났어도 마음 속 만인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감옥살이할 때 국어사전을 달달 외웠다는 게 사실인가.

"맞다. 창문도 없는 특별감방엔 담요와 오줌통, 천장의 전구만 있었다. 숨 막히는 큰 관(棺) 같았다. 12일간 단식했더니 일반실로 옮겨줬다. 이때 국어사전을 공부할 자유를 얻었다. 이후 사전을 한 장씩 씹어 먹으며 외웠다. 달달 외우고 나니 언어력이 생겼다. 만인보 언어의 바탕이다. 나는 언어의 거지다. 공기에 들어 있는 새로운 언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찾고 또 찾아도 늘 언어에 배고프다. 시인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백지 아닌가."

시인은 1980년 5·18 광주항쟁에 연루되어 구속된다. 이후 갖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1982년에야 8·15 특사로 사면된다.

-일기가 재밌다. 1200원 꾸고 1만원 빌려주고 하는 소소한 일상에, 성욕까지도 언급된다.

"30대 중반(1970년대)부터 일기를 써왔다. 문단 초년시절 우연히 김구용 선생의 일기장을 보게 됐다. 덧없는 하루하루를 뭐 하러 시시하게 적고 있느냐고 핀잔을 줬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먼지의 기록이나 시간의 파편들이 제법 의미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에 갔을 때 말고는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일기는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누구 몰래인 것도 아니다. 삶의 자동서술일 뿐이다.”

-한번 펜을 들면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문이지만) 시란 무엇인가.

“으음 글쎄, 시(詩)란 시 그 자체다. 시의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시어들은 낱낱의 문자가 아닌 살아있는 생물이다. 시의 마음이 삶과 죽음을 동행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은 시로 태어나서 죽을 때도 시로 마감한다.”

시인은 지난 2000년 6월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행했다. 당시 만찬석상에서 시인은 '대동강 앞에서'라는 시를 낭독했다. 그는 “당시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남북 간 긴밀한 교류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당장 내일 모레 통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통일은 우리 민족의 염원이기에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민중과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실천하는 양심과 지성의 대명사다.

-인문학 실종시대다.

"안타깝다. 인문(人文)은 우리의 근원을 알아가고 어디로 가야할지 깨닫는 과정이다. 시집간 아낙네가 친정 갈 때의 기쁨처럼. 이 시대는 인문학이 필요 없는 것처럼 여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책을 통해 인문의 근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안성 장미골을 떠나게 된 이유는.

“난 80년간 떠돌이로 살았다. 시의 밑바탕이 된 것도 방랑벽이다. 전북 군산(옥구)에서 태어났고 외가(外家)는 충남 서천이다. 옛 고향은 지금 고층아파트가 꽉 들어찼다. 낯선 타향이 돼버린 것이다. 그중 안성은 내 문학의 저변(底邊)을 이룬 곳이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몇몇 지자체들이 자기 지역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권유가 있었다. 특히 수원시가 공을 들였다. 리모델링한 집으로 초청했고, 내가 응했다.”

-문학에서 장소가 중요한가.

“우리는 오랫동안 농경생활의 관성으로 제자리에서 정착생활을 해왔다. 사립 밖이 저승이었다. 그것이 심해지면 지역감정으로 고착되기도 한다. 다산이 20년 가까이 귀양살이하면서 커다란 세계를 만들었듯이 문학에도 순환의 피를 공급하는, 땅의 피란 게 있다. 괴테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문학을 완성한 곳은 바이마르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서부 캘리포니아 사람인데 뉴잉글랜드 대표시인으로 각인된 사람이다. 역시 미국 시인 로빈슨 제퍼슨은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연인과 함께 가서 살아 캘리포니아 시인으로 알려졌다. 장소는 향기를 머금고, 그 향기는 족적을 남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그 꽃'이란 시는 절창(絶唱)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철이 들고 깨닫고 보면 지나온 세월에서 후회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안 보였던 일, 못 보고 스쳐 지나갔던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이 없으면 안 보인다. 마음이 어두우면 안 보인다. 철이 들고 깨달으면 그때부터는 다 보인다. 결국 멈추면 보인다. 바쁜 삶이지만 잠시라도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라."

시인은 담대했다. 그 담대함 속에는 이미 '노벨문학상'을 타고도 넘칠 따뜻한 시심(詩心)이 그득했다. 봄으로 가는 길목, 겨울이 낮게 숨어 있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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