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많은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땐 단지 소수만이 그 자리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 리더들 모두가 역사의 진보에, 시대의 전진에, 더 나아가 인류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아니 역사의 퇴행을 가져온 리더도 많았고, 공공의 선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일신의 영달과 안위만을 탐닉했던 리더들이 더 많았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목도하고 있다. 진정한 승자로서의 리더일 수도 있지만 패자로서의 리더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무엇이 리더를 승자와 패자로 가를까? 리더에는 두 유형이 있다. 리더의 자리를 받았다고 여기는 유형과 그 자리를 쟁취하였다고 생각하는 유형이 있다. 받은 자라고 생각하는 리더는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기에는 2% 부족한 자임을 인정한다.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오르게 해준 조직에, 구성원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빚진 자의 자세로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는 겸손의 모습으로 조직의 발전에 보답하고자 애쓴다. 부족함을 알기에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한다. 본인도 소위 '루저(loser)'일 수 있기에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자들의 아픔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가 있다. 거기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일체감이 솟는다. 조직의 발전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쟁취한 자라고 여기는 리더는 어떠한가? 리더의 자리는 본인이 욕심내기에, 성취하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든 능력과 노력에 온갖 권모술수와 지략을 총동원하여 그 자리에 오른다. 승자의 마음이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좋다. 그러나 세상 지사 공짜는 없다. 대가 심리, 보상심리가 발동한다. 투자했으니 두 배로 돌려받고 싶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그 뛰어난 내 능력을 얼마나 쏟아 부었고, 그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가?' '이 자리는, 이 조직은 나의 노력과 능력을 보상받기에 합당한 물체일 뿐, 내가 헌신할 유기적 생명체는 도대체 아니지 않은가?' 여기서 교만과 탐욕이 싹튼다. 조직의 퇴행은 당연한 귀결점이다.

충청인의 정치적 자존심으로까지 여겨지는 이완구 의원이 우여곡절 끝에 현대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지역의 리더를 넘어 나라의 리더가 된 것이다. 혹자는 청문회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 불미스러운 점을 이유로 '반쪽 총리'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전혀 괘념할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출발이 '반쪽총리'이기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받은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의 자세로, 본인 자신과 지역을 뛰어넘어서 국민만을 바라보며 공무를 수행할 수 있다. 거기에는 교만이나 우월감이 싹틀 수 없고, 오직 헌신만이 있을 뿐이다. 시대적 소명에 따른 역사발전은 그런 곳에서 이루어진다. 청문회 정국에서 반대한 쪽이든, 찬성한 쪽이든 이완구 의원의 능력과 성실성만은 모두가 수긍하지 않았던가? 경륜의 이완구 총리가 진정한 승자로서의 리더가 되기를 마음 가득 담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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