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이응노 화백이 죄인이라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는 것이다. 목소리도 맑고 나지막했으며 뒤로 깨끗이 빗어 넘긴 흰머리는 유럽 미술계의 거인으로 우뚝 선 그의 카리스마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의 화제는 그의 헤어스타일부터 시작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고 대전교도소로 이감됐기 때문에 그 당시 규칙으로는 머리를 스님처럼 빡빡 깎아야 했다. 그런데 그의 머리는 그대로 있었다.
이응노 화백은 옆에 앉아 있던 교도소장에게 "내 머리(首)는 짤라도 되지만 이 머리(髮)만은 안 짜르게 해달라"고 농담 속에 진심을 비쳤다. 그러면서 그는 교도소의 특수한 환경에서 예술혼을 응집시키는 어떤 암시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응노 화백은 세계 미술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밥풀'조각을 이곳 대전교도소에서 만들었다. 재소자에게 식사 때 나오는 밥을 아껴 그것을 모았다가 진흙처럼 반죽을 하고 물감이 없기 때문에 반찬으로 나오는 된장과 간장을 밥풀에 부어 색상을 나타낸 것. 그러니까 그때 죄수복을 입고도 미소를 머금고 무엇인가 암시하던 것이 이 작품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탄생된 것이 '얼굴'이라는 이름의 32×16×125㎝의 밥풀소조다. 그 작품을 한참 응시하노라면 그 '얼굴'들과 몸짓에서 그 어떤 것에도 포기할 수 없는 영혼의 불길, 간절한 인간의 자유, 그 희망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것 말고도 대전교도소 수감 중 300여점의 옥중화 그림을 그렸고 이 소중한 작품들은 고암 이응노의 실험정신이 잘 나타난 것으로 찬사를 받았는데 최근 미국 시카고미술관에서 전시에 관심을 보여 다른 그의 작품과 함께 이 '밥풀'의 메시지도 미국대륙에까지 전파될 희망을 갖게 됐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은 이 전시가 성사되면 유럽 중심으로 잘 알려진 이응노의 작품세계를 북미대륙에까지 더욱 알려질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프랑스에 있던 1300점의 이응노 작품을 새로 기증받는 등 기대이상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응노미술관이 대전의 문화적 자산이며 경쟁력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