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글밭] 김인식 대전시의회 의장

국토부의 '호남고속철 KTX 서대전역 미경유' 발표에 시민 모두가 또 한 번 서운함과 허탈감에 빠졌다.

필자에게는 지역 정치인으로서 느끼는 자괴감까지 더해져 더욱 괴롭다. 그런데 '서대전역 경유 절대불가'를 외쳤던 호남권도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광주역 경유와 운행횟수 대폭 증편 이란 실익을 놓쳤음은 물론 이제는 그들도 대전을 포함한 충청권을 찾을 때 익산서 갈아타는 불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충북도 또한 마찬가지다. 오송역 환승인구 증가라는 얄팍한 이익에 눈멀어 충청권 공조라는 큰 대의에 균열을 낸 것이다. 오히려 서대전역을 지나는 KTX는 오송을 절대 정차하지 말라는 대전시민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이번 결정을 두고 진작 충청권과 호남권이 머리를 맞대고 여러 경우의 수에 대비한 대응책과 그에 따른 교집합을 찾지 못한 아쉬움을 가져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호남권에 묻고 싶은 게 있다. 대전시장의 대화제의에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는 없었는가? 100년 넘게 수도권과 호남을 이어온 서대전역에 대한 대전인의 정서를 생각해 보았는가? 호남에도 100년 역사의 가치와 소중함을 지닌 무엇이 있을 터인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잃을 위기에 봉착했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최종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국토부의 모습 또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

우선 2006년 4월 14일자 충청투데이의 기사를 보면 국토부의 전신 건교부 장관은 전(前) 시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호남선 KTX 서대전역 통과를 원칙적으로 수용하고, 향후 승객 수요를 감안해 운행횟수를 조정할 것을 약속했다. 올해 2월 4일자 광주일보에서도 국토부 장관은 "건설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수요도 고려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의견수렴과 시·도지사와의 사전협의 및 결정 안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었어도 고위 공직자의 약속은 지켜져야 마땅하다. 만일 번복이 필요하다면 타당한 명분과 상대방의 이해가 선행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이번 결정 안은 한밤중 기습적으로 발표됐고, 공교롭게 22만 대전시민의 염원이 담긴 청원서가 전달된 날이다. 정치적 입김을 떠나 합리적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충청권, 호남, 코레일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최적의 방안을 찾았다면 무엇보다 소중한 국민행복권(보편적 교통복지) 확보는 물론 코레일의 실익과 더불어 지역 간 상생의 가치도 한층 높였을 것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죽으며 두 아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모든 것을 반으로 나누어 가지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자식들은 서로 다투느라 유산을 나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웃 사람에게 묻자 그는 "자네들 아버지께서 어떻게 나누라고 말씀하셨는가?"하고 물었다. 두 아들이 "아버지께선 모든 것을 반으로 나누라고 하셨습니다"하고 답하자 이웃이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옷과 그릇과 가축을 절반으로 자르게" 형제들이 이 말대로 하자,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유산분배라는 짧은 글이다.

필자가 이 글을 소개하는 까닭은 바로 내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 만큼은 서로 윈윈(WIN-WIN)하자는 뜻에서다. 모두가 패자가 된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서울 강남권과 이어질 수서발 KTX 노선 결정에서는 성숙된 모습으로 서로가 힘이 되자. 또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지금이라도 익산에서 끊어진 충청과 호남을 다시 이어야 한다. 양측의 빠르고 편안한 이동을 위해 서대전-논산 구간 직선화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 이용 당사자들이 모두 원한다면 긍정적 결론이 날 것이다. 반으로 잘린 가축에서는 달걀도 우유도 얻을 수 없다. 상생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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