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노진호 편집국 교육문화팀 차장

대전시티즌의 두 번의 우승을 모두 함께 한 ‘샤프’ 김은중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는 지난 시즌 대전의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우승을 이끈 후 선수생활 연장 여부를 고민하다 결국 지도자라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김은중은 벨기에 2부리그 팀인 AFC 투비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게 됐으며, 현재 벨기에 현지에 머무르고 있다.

비록 몸은 대전에서 떠났지만, 그는 어떤 형식이든 계속해서 시티즌과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구단 역시 김은중의 지도자 연수를 지원할 방침으로 AFC 투비즈와의 친선경기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전과 김은중의 인연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은 이견이 없지만, 아직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그에 대한 은퇴식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물론 구단에서도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겠지만, 김은중의 은퇴식은 반드시 거행돼야 한다.

흔히들 “K리그에는 구단의 레전드가 없다”고 한다. 레전드는 단순히 그 선수만을 위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구단의 역사이며, 팬들이 공유하는 스토리이고 문득문득 떠올리게 될 추억이다. 그러한 스토리와 추억은 구단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진정한 명문 구단으로 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대전에서 뛰었던 골키퍼 최은성은 대전에서만 464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2012년 초 대전에서 방출된 후 전북현대에 입단했고 지난해 은퇴했다. 전북은 지난해 7월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상무와의 경기에서 최은성의 은퇴식을 열었다. 그가 경기장에 등장하자 전북 서포터즈는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1만 5216명의 관중은 큰 박수로 노장의 마지막 선발출전을 응원했다. 또 이날 전북 선수들은 최은성의 출장 기록인 532라는 숫자와 그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었으며, 이동국은 주장 완장을 선배에게 양보했다. 현장을 찾은 150여명의 대전 서포터즈는 뜨거운 눈물로 무정하게 떠나보낸 자줏빛 전사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했다.

전북의 이 같은 결정은 파격적이었다. 최은성은 누가 봐도 대전의 대표 선수였고 어쩌면 전북은 선수생활 후반 잠시 거쳐 간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북은 프로축구 무대를 빛낸 노장에게 예우를 갖췄다. 전주성에서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최은성을 보며 가슴 깊이 미안했던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지난해 12월 18일 네덜란드 필립스 스타디움에서는 또 하나의 뜻깊은 장면이 있었다. PSV 아인트호벤은 박지성의 공식 은퇴식을 개최했고, 관중석에는 태극기가 그려진 거대 현수막이 등장했다. 이날 박지성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필립스 스타디움에는 ‘위송 빠레’가 울려 퍼졌다.

아인트호벤의 결정도 전북의 그것처럼 감동적이었다. 우리에게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일지 몰라도 아인트호벤은 여전히 그들의 전사로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김은중은 지난해 친정팀으로 복귀하며 “K리그 구단에는 레전드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다시 대전 팬들을 앞에서 뛸 기회를 준 시티즌에 감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친정팀 복귀는 미국 연수 계획까지 접은 용단이었다. 그는 그라운드 내에서든 벤치에서든 클럽하우스에서든 팀의 리더였고, 시티즌은 클래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구단이 레전드를 위해 나서야 한다. 오는 3월 15일 열릴 광주와의 올 시즌 홈 개막전이나 구단에서 추진 의사를 밝힌 투비즈와의 친선경기가 김은중의 은퇴 무대로 어울릴 것이다. 최은성에 대한 미안함, 같은 창단 멤버인 김은중에게라도 갚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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