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6일에 있은 해군 해병대 사관후보생 117기 임관식에서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둘째딸 민정 씨가 해군소위로 임관했다.

최 소위는 재벌가의 자식으로서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외손녀로서 어떤 특별한 배려도 없이 일반 생도들과 똑같이 훈련에 임했고 이제 일정기간 준비단계를 거쳐 올 봄 함정에 배치될 것이라고 한다.

해사에 입교하기 전 그는 흔히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특목고를 거부했고 중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중국인들 사이에 혐한(嫌韓) 분위기가 일어나자 '손에 손잡고'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재벌가의 자녀들이 병역을 기피하는 경향과는 달리 더욱 여성으로서 힘든 과정을 거쳐 해군장교가 되었다는데서 호의적인 반응이 컸던 것 같다.

현대그룹을 일으킨 정주영 회장의 손자 중에도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젊은 경영인이 있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정주영 회장의 7남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장남 정경선 씨. 올해로 30세가 되는 그는 2012년 '루트임팩트'라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인데 그가 "재벌가 자제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먼저 한국사회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은 가슴에 와 닿는다.

이처럼 재벌가의 후계자로 무임승차를 거부하고 일정기간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경우를 드물게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두산가의 4세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도 광고업과 별도로 콘돔 제조업에 뛰어들어 직접 길거리에서 콘돔을 나눠주며 홍보를 하고 있다. '미혼모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기에 청소년들이 콘돔을 구입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

우리 지방에도 지난달 계룡건설 사장에 오른 이승찬 씨의 경우 이인구 회장이 아버지임에도 학교 졸업 후 계룡건설에 들어가지 않고 서울의 모 건설회사에 취업, 일선 현장인부들과 생활하며 고된 과정을 거쳤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려는 진정성 있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임승차로 재벌가의 경영인이 된 경우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에서 보듯 '난폭운전'같은 처세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정말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은 구멍가게에서 조차 있을 수 없는 최소한의 기업윤리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조현아 부사장이 검찰에 출두하던 날 '복수하겠다'며 섬찟스런 글을 올린 그의 동생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역시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재벌가 3-4세들의 어처구니없는 민낯이었다.

대한항공 사건은 비록 국제적 웃음거리를 제공했지만 재벌가의 2세, 3세 경영인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진정성 있는 자세가 먼저 갖추어져야 함을 엄숙히 보여준 교훈이다. 그래서 SK그룹 최 회장의 딸이 해군소위가 된 것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우리사회가 건강해지고 자본주의는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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