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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곤로, 성냥, 다이얼전화기...사라져가는 추억의 물건들

최정우 기자 wooloosa@cctoday.co.kr 2015년 01월 02일 금요일 제31면     승인시간 : 2015년 01월 01일 14시 12분
▲ 다이얼전화기 〈1950년대〉
시대의 흐름에 쫒아가는 것이 순리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엄청난 변화의 과도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며 스스로에게 이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느덧 시대의 변천사를 보고 절절하게 체험을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것들로 인해 인간의 욕구는 충족 그 이상의 것을 느끼고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감성과 이성에서 벗어나 끊임없는 호기심의 고속질주를 하고 있는 듯한 감성을 들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 다르겠지만 현 시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것에 비춰 세상을 보기도 하고 자신이 희망하는 분야에 촉각을 세우고 정보를 수집하고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하며 대리만족 하는 현실이다. 충청투데이는 현대인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물건들을 상기시킴으로써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향수를 선물하기 위해 '추억속으로'를 기획했다.

△과거와 현재의 공감 “그땐 그랬지…”='시간'이라는 테옆을 과거로 돌려보자.

첨단 문명이 발달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없는 형편에도 알뜰살뜰 살림을 장만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시절 가정집 풍경이 이채롭기까지 하다.

부엌의 전기 곤로, 풀색 냉장고, 0~9까지 일일이 돌려서 전화를 걸어야 했던 다이얼전화기, 부(富)의 상징이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골동품이 돼버린 전축에 LP판까지. 기억 저편에 자리한 채 사라진 가정용품들이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만든다.

한국 파이프히터식 전기곤로의 선두주자는 풍광전기다. '파이프 히터'를 열원으로한 전기곤로는 당시 곤로가 가진 결합점을 보완한 구조면에서 우수한 제품으로 평가받았다. 기체는 물론 발열체, 반사판, 코드선, 열판, 기체스위치 등의 재질이 우수해 보통 제품보다 수명이 장구하며 보관도 편했다. 100V에 500W짜리가 2800원, 200V에 1㎾짜리가 3200원에 팔려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풀색 냉장고도 미묘한 추억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카피가 어렴풋이 생각날 것이다. 우리나라 원조 전자회사인 골드스타(GoldStar)마크가 가전제품 시장을 지배할 무렵, 가정집은 물론 기업의 탕비실 한켠에는 녹색냉장고가 터줏대감 역할을 다했을 것이다. 약 370ℓ용량의 소형이지만 국민학교에 다녀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었던 까까머리 어린이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묵묵히 함께하며 추억을 간직해왔다.

‘드르륵~ 턱’ 둔탁한 소리를 수차례 반복해야만 상대방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다이얼전화기’도 잊을 수 없다. 전화기보다 수화기로 불리기가 정겹던 시절, 다이얼을 손수 돌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누군가는 전화기를 붙잡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세월의 추억은 주마등처럼 스치곤 한다. 세월의 흔적과 함께 멋스러움까지 묻어나는 블랙색상의 50년대 미제 '다이얼 전화기'의 벨소리가 그립기까지 한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정겨운 노랫말이다. 레코드에서 받는 바늘의 기계적 진동을 진동 전류로 바꾼 뒤 이것을 증폭해 확성기를 통해 원음을 재생하는 장치,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정서를 평온하게 만든다.

찬바람이 불면 왠지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복고풍이 유행하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추억의 물건덕에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 아리랑성냥 〈1970년대 말〉
△아날로그식 사랑 “그때가 좋았지…”=감각적인 디자인과 첨단 기능을 자랑하는 요즘의 신제품들에 비교한다면 투박하고 촌스럽기 그지 없는 모양새지만 그 속에서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 골동품만의 매력이다.

친구, 연인, 가족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아날로그식 방법이 오히려 효과를 톡톡히 보일 때가 있다. 손엽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메일, 스마트폰 등의 시대의 흐름에 밀려 우체통과 손편지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손엽서’라고 하면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친구나 가족에게 보낼 엽서의 종류를 고를 때의 즐거움, 엽서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릴 때의 설렘, 종이상자에 한가득 모아둔 편지를 몇 년이 지난 후에 꺼내 볼 때 떠오르는 추억, 그것에는 아마도 요즘 모든 사람의 소통 수단인 카카오톡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무언의 경계가 있다.

보내는 즉각 즉각 답장이 오고 대화 내용이 한눈에 보이게 되어 있어 혹시 말실수를 하더라도 곧바로 정정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된다. 쉽고 편하게 사용하며 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카톡과는 달리 오래 간직할 수 있고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담을 수 있는 손엽서는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무선호출기라 불리던 ‘삐삐’도 빠져선 안되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83년부터 무선 호출 서비스가 개시돼 휴대 전화가 대중화되기 전, 1980~1990년대에 널리 사용됐다. 기다림의 미학이랄까? 연인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휴대전화와는 달리 글자가 아닌 숫자가 전하는 무언(?)메시지에 의존할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커피전문점이 많지 않았을 무렵, 이성과의 만남의 장소인 제과점과 다방에는 ‘아리랑 성냥’이 비치돼 있어 이성의 연락을 기다리는 남성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다.

상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 줄도 모른 채, 호출만 받고 부랴부랴 공중전화기로 향할 때마다 대기자 행렬은 끝을 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휴대전화 서비스의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사용자 수가 급격하게 줄었지만 요즘에는 병원에서 의사들끼리 환자를 살리기 위한 호출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후 사람들은 서로간의 소통을 음성으로 대신한다. 1988년 모토로라의 다이나택 8000의 탄생과 함께 국내 휴대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83년 세계 최초로 무게 1.3㎏의 모토로라 다이나택(Dyna TAC) 8000이 출시되며 휴대폰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국내 휴대폰의 시작은 최초 휴대폰이 다섯 돐을 맞이하던 1988년, 모토로라 '다이나택 9800'이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되면서 대한민국 휴대폰 역사의 막이 올랐다. 기존 다이나택보다 훨씬 가벼워졌지만 '벽돌폰'이라는 이미지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240만원(당시 공중전화 통화료 20원)이란 고가였고 연속통화 시간은 2시간에 불과했지만 호응은 대단했다. 이후 모토로라는 또 한 번 디자인의 혁명을 불러온 폴더형 휴대폰 스타택(StarTAC 7760·슬림형 배터리 착용 시 무게 103g)을 출시, 남녀노소 모두에게 돌풍을 일으키며 130만대를 판매하는 등 폴더형 휴대폰 중에는 가장 많이 팔리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 삐삐 〈1980년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추억의 불량식품 “그맛이 그립지...”=어린시절 문방구는 까까머리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100원의 유혹을 못 이겨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하나 둘 씩 긁어모으다보면 어느덧 불량식품을 손에 쥐고 있었다. 찍어 먹는 초콜릿 과자 ‘얀얀’(얌얌). 매번 초콜릿을 듬뿍 찍어 먹으면서도 항상 초콜릿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별뽀빠이’과자 또한 소소한 추억을 남긴다. 라면 부스러기 같은 괴기한 모양이지만 별사탕과 함께 먹으면 담백하고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한 번 더 생각나는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기억을 스치는 불량식품은 ‘아폴로’다. 빨대 안에 내용물을 먹기 위해 앞니로 열심히 긁었던 아폴로는 모든이들의 기억속에 자리잡혀 있는 불량식품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방구 밖의 분위기 또한 왁자지껄하다. 불량식품에 빠질 수 없는 쫀드기를 굽거나 뽑기를 제작(?)하면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로 친구들은 하나 둘 씩 모여든다. 볼품은 없지만 한없이 정겨웠던 군것질 거리가 자리하면 선생님께 들었던 꾸증도 금세 잊게 만든다. 문방구 앞의 추억은 수년간 연락이 닿지 않아 잊고 지냈던 고향친구를 본 것처럼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최정우 기자 wooloos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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