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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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26)


"임인년(성종 13년)에 폐비께 사약을 내릴 때도 실상인즉 성종대왕께서는 비록 왕비를 폐서인(廢庶人)하기는 하셨으나 원자의 생모이신 데다 옛날에 총애하시던 정을 잊지 못하시고 내시를 폐비의 사가(私家)로 보내시어 폐비의 동정을 살펴보게 하셨는데 미리 낌새를 채신 인수대비와 정씨, 엄씨 등이 그 내시를 매수하여 폐비가 조금도 뉘우치는 빛이 없이 날마다 분바르고 머리 빗고 원자가 장성하면 원수를 갚는다고 벼르고 있다고 거짓으로 꾸며 아뢰게 하니, 성종대왕께서는 그 말을 곧이 들으시어 드디어 사약을 내리셨다고 하옵니다."

임사홍은 마치 외고 있었던 것처럼 더듬거리지도 않고 막힘이 없는 능변(能辯)으로 한참 동안 장광설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폐비 윤씨가 후궁 정씨와 엄씨에게 사형(私刑)을 가한 일과 비상을 바른 곶감을 몰래 감추어 갖고 있다가 탄로가 나 삼월(三月)이라는 시비가 교수형에 처해진 일, 성종과 후궁이 함께 있는 방에 느닷없이 뛰어든 일, 윤씨 자신이 좌서(左書)로 꾸민 편지 사건 등등 윤씨가 국모로서 실덕하여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 일에 대해서는 일어반구도 비치지 않았다.

"경의 말대로 정씨와 엄씨가 폐비사건의 원흉이라면 이들이야말로 불공대천의 원수인데, 내가 그걸 모르고 대내에서 한 하늘을 이고 삼십평생을 같이 살면서 서모(庶母)로 대우하였으니 이렇게 통분할 노릇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내 당장 이년들을 능지처참하고 안양군, 봉양군과는 형제의 의리를 끊고 말리라!"

왕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가려다 말고, 방바닥에 엎드려 있는 임사홍을 노려 보았다.

"경은 어째서 그러한 사실을 이제야 와서 아뢰는 것이오? 왜 진즉에 말하지 않았소?"

"황공하오이다. 신이 일찍이 득죄하여 금고(禁錮)가 된 몸인지라 구중궁궐 깊은 곳에 계시는 전하를 뵈올 수가 없었던 것은 이미 아뢴 바와 같사옵니다. 아들 숭재나 자부 옹주를 통하여 아뢸 수도 있었겠으나 일이 워낙 중대할 뿐만 아니라 인수대비께서 전하의 생모를 폐출하신 직후에 만일 원자(元子)에게 폐비사건에 관한 비밀을 한마디라도 누설하는 자는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엄한 함구령을 내리셨던 까닭으로 대왕대비 생전(生前)에 감히 아뢰지 못하다 오늘밤에 뵈온 것이 신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어 감히 아뢴 것이옵니다."

"대왕대비의 함구령이 무서워 아무도 폐비의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을 내게 귀띔해 준 자가 없었다면 모두가 하나같이 불충한 무리들뿐인데 오직 경 한 사람만이 충직하다는 것을 알았소."

"망극하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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