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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光祖의 부러진 화살

본사 명예회장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제21면     승인시간 : 2014년 12월 09일 20시 24분
바람은 차지만 햇빛이 따사로운 지난 늦가을, 처음으로 전라남도 담양 나들이를 했다.

담양하면 대나무로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소쇄원'(瀟灑園)이라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원을 둘러보고는 보석을 찾은 기분이었다. 원래 조선시대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명승지임에도 남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잘 보존됐는지도 모른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라는 조선 중종 임금시대의 선비가 자연 풍치를 최대한 살려서 조성한 이름 그대로 '맑고 깨끗한 정원'이다.

그는 스승 조광조(趙光祖)가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자 벼슬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은거, 학문을 닦고 자연을 벗하며 살다 갔다.

조광조는 누구인가? 정도전, 정약용과 더불어 3대 개혁가로 꼽히는 인물.

나는 가끔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성공했더라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광조는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소위 '훈구파'의 기득권 세력에 활을 쏘다 희생된 정치가다.

그때 훈구파로 불리는 공신이 105명이나 되었는데 중종은 정치적기반이 약하자 이들 공신들을 많이 양산하여 후원자로 삼았던 것.

그로 하여 국고가 심각하게 낭비되고 그들의 적폐 또한 기승을 부리자 조광조는 76명을 정리해 버렸다. 그것은 화약을 짊어지고 불로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심각한 반발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나 조광조는 굽히지 않고 집권세력의 갖가지 폐습정치를 새롭게 바꿀 민본정치를 실현하려고 개혁의 화살을 날렸다. 중종 임금도 처음에는 조광조의 '새로운 피를 수혈하려는 유신정치'를 지지했으나 훈구파들의 반발이 자신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것을 우려하여 결국 그를 귀양 보내고 사약을 내리고 만다.

율곡 선생이 지적했듯이 '학문이 익지 않은 상태'에서의 그의 급진적 개혁이 좌절되고 말았지만 그래서 더욱 조광조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우리 역시 정치개혁을 넘어 정치혁신 또는 국회개혁의 소리는 높지만 그에 반발하는 만만찮은 벽에 부딪히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 출판기념회 금지, 무노동 무임금, 불체포 특권 같은 것에 기득권의 반발이 심한 것 같다. 이것을 주도한 사람들에게 비난을 넘어 인신공격에까지 이르고 있다니 조선정치의 적폐를 개혁하려다 사약을 받은 조광조시대가 생각난다.

정말 정치권이 이런 것을 개혁하지 않고는 공무원연금개혁이나 방위산업 비리 척결, 공공기관 혁신 같은 개혁의 요구는 도덕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국회가 갖고 있는 특권, 그 병적인 기득권을 포기하는 아픔을 국민 앞에 보여줘야 그다음 단계의 개혁을 이루어 갈 수 있다. 요즘 대기업들이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위기극복에 전력투구하는데 대한민국도 그래야 산다. 이젠 '조광조의 화살'이 부러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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