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최진섭 경제1팀장

2005년에 벌어진 일이니 꽤 오래된 이야기다. 유명 연예인 A 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3중 추돌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A 씨는 사고 후 10시간이 더 지나서야 경찰에 출두했다. A 씨는 음주운전 사실을 숨기고 싶었겠지만(본인은 10시간이면 충분히 숙취를 해소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결국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당황한 A씨는 당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개드립을 선보여 장안의 화제가 됐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온당한 정신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A 씨의 이 같은 발칙한 발언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A 씨의 발언을 조롱하는 각종 패러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건은 훔쳤지만 도둑은 아니다’, ‘뇌물은 먹었지만 비리는 아니다’, ‘사람은 죽였지만 살인은 아니다’ 등등 막장 패러디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2014년 겨울, 향토기업임을 자처하는 대전의 한 기업이 A 씨의 개드립을 뛰어넘는 황당무계한 말로 지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언론사의 횡포로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선언한 지역 기업이 알고 보니 3년 전부터 이전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자 해당 기업은 A 씨의 오래된 명언을 빌어 다시 한번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대사(?)를 읊었다.

‘본사 사옥 이전을 위해 입찰 공고를 낸 것은 사실(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이지만 본사 이전 계획은 없었다.’

이 기업이 연예인 A 씨보다 더 발칙한 것은 들통 난 사실에 대해 자숙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공공기관에 책임을 전가하려했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은 모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사 이전 계획이 없는데도 본사 이전을 위한 입찰 공고를 낸 것은 당시 세종시에서 협조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발뺌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세종시도 행복청도 이 기업의 본사 이전과 관련,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사태가 점점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해당 기업은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겠다고 했지 않냐’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태를 놓고 봤을 때 머릿속을 스치는 한가지 생각이 있다. 해당 기업의 본사 이전 공사현장은 건축허가표지판대로라면 2016년 3월 준공될 예정이다. 1년여 동안 잠시 서울 나들이를 갔다 준공 시기에 맞춰 다시 세종시로 돌아오기에 아주 적절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이 같은 찰나의 생각이 과연 지나친 추론일까.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본사 이전을 볼모로 지역 기업의 웬만한 불법행위는 당연히 눈감아줘야 한다는 논리를 언제까지 주장할 수 있을지 이 또한 끝까지 주시해야 될 대목이다. ‘제발 대전지역을 떠나지 말아주세요!’, ‘사랑 합니다’, ‘대전을 지켜주세요’ 외치는 대전시 기업도우미들을 바라보며 해당 기업 대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이 기업이 이야기하듯 진정 언론의 횡포인지, 지역민과 지자체를 우롱하는 기업의 횡포인지는 지금부터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이미 술은 마셨고 차에 탔고, 시동까지 걸었다. 이제 액셀만 밟으면 명백한 음주운전이다. 언제까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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