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욱 충북도립대학 교수

영화 인터스텔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이 영화로 물리학과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오늘은 종교재판을 받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당시로선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깡다구(?)에 대한 이야기 좀 해 볼 까 한다. 갈릴레이는 1564년 2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물리학자이며 과학 혁명을 주도한 사람이다. 주요 업적으로는 망원경을 개량해 태양의 흑점을 발견한 것을 비롯해 운동 법칙의 확립 등이 있으며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고 태양임을 내세운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갈릴레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지동설을 주장하며 종교 재판 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갈릴레이가 재판을 받을 때 고문이나 협박이 없었음은 물론 재판기간 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교황청이 배려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종교 재판 결과도 가택 연금 뿐 이었다.

그럼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을 받고 나오면서도 지동설을 주장하는 명언을 남기게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갈릴레이는 1610년 ‘별 세계의 보고’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는데 당시 갈릴레이의 관측 결과와 지동설은 다 알다시피 이 때까지도 교황청은 천동설을 믿고 지지했으며 지동설은 금기시해 결국 1616년 갈릴레이의 학설은 금지됐고 그의 활동도 중지됐다. 그런데 이후 우르바누스 8세가 교황이 되면서 갈릴레이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다시 새 학설을 발표하기로 하고 출판 허가를 얻기 위해 로마로 갔고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가설로만 서술하라는 조건하에 출판 허락까지 받았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이를 정식 학설로 발표했고 결국 종교 재판까지 받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갈릴레이가 가설이 아닌 정식 학설로 발표하고 종교 재판 중에도 아주 편하게 지낸 사실이며, 재판 결과도 가택 연금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우르바누스‘ 교황이 바로 갈릴레이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한 깡다구는 바로 믿는 바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빽이 좋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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