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욱 충북도립대학 교수
그럼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을 받고 나오면서도 지동설을 주장하는 명언을 남기게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갈릴레이는 1610년 ‘별 세계의 보고’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는데 당시 갈릴레이의 관측 결과와 지동설은 다 알다시피 이 때까지도 교황청은 천동설을 믿고 지지했으며 지동설은 금기시해 결국 1616년 갈릴레이의 학설은 금지됐고 그의 활동도 중지됐다. 그런데 이후 우르바누스 8세가 교황이 되면서 갈릴레이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다시 새 학설을 발표하기로 하고 출판 허가를 얻기 위해 로마로 갔고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가설로만 서술하라는 조건하에 출판 허락까지 받았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이를 정식 학설로 발표했고 결국 종교 재판까지 받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갈릴레이가 가설이 아닌 정식 학설로 발표하고 종교 재판 중에도 아주 편하게 지낸 사실이며, 재판 결과도 가택 연금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우르바누스‘ 교황이 바로 갈릴레이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한 깡다구는 바로 믿는 바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빽이 좋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