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철수 정치경제부장

충북도의회가 요즘 실체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내년도 의정비 인상을 위한 협상 카드로 재량사업비 폐지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재량사업비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점이다.

의원 재량사업비는 지방자치법 예산편성 기준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오히려 지방자치법 제127조는 예산편성권을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방의원의 생색내기용으로 전락하고 있는 재량사업비는 ‘주민숙원사업비’란 명분아래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장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안전행정부도 일찌감치 지방재정 건전화를 위해 시정권고 통보를 한 상황이다.

도는 올 당초예산에 의원 1인당 3억원 씩, 모두 35명에게 총 105억원의 재량사업비를 편성한데 이어 6.4지방선거 후인 지난 9월, 31명의 의원 1인당 9000만원 씩 총 27억 9000만원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 논란을 자초했다. 지난 6월 말로 임기가 끝난 제9대 도의원들이 올해 쓸 재량사업비를 모두 소진한 만큼 추가로 2억원 씩을 편성해 달라는 제10대 도의원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도민의 혈세 132억 9000만원이 올해 의원 재량사업비로 충당됐다.

열악한 지방재정 여건상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내년도 담배 소비세의 일정분을 재난·안전을 위한 지방소비세로 전환해 달라고 하는 마당에 이 같은 막대한 재량사업비가 도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곳이 쓰여진다면 지방재정 건실화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재량사업비는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 충북(3억 9000만원), 충남(6억원), 강원(3억원), 전남(2억 5000만원), 제주(3억 3000만원) 등 5곳의 도의회 만 유지되고 있다. 도내 11개 시·군 중 내년도 재량사업비를 편성한 곳은 청주·충주시와 영동·단양군 4곳뿐이다. 더욱이 청주시는 최근 의원재량사업비 폐지를 결정, 의회의 수용을 기다리는 중이고 옥천군은 내년부터 의원재량사업비를 폐지키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의회는 내년도 의정비를 8.7%(432만원) 인상한 5400만원 정도를 요구하면서 재량사업비를 협상 카드로 제시했다가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슬쩍 폐지론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도의회는 지난 12일 제336회 정례회를 개회하면서 의총과 의원 연찬회에서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봤지만 매듭을 짓지 못하자, 재차 논의키로 하고 결정을 유보한 상태다.

일단 도가 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의원 재량사업비가 빠져 있어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를 비롯한 도내 시민사회단체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도의원들이 욕심을 낸다면 내년도 초 수정예산이나 4~6월 예정된 추경예산안에서 의원 재량사업비를 부활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의원 ‘생색내기용’ 내지는 ‘선심행정’으로 흐르고 있는 의원 재량사업비에 대해 각계각층의 우려가 큰 것이다.

도의회는 지난 7월 원구성 문제로 여·야간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오다 최근 해외연찬회를 앞두고 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의정비 인상 요구와 재량사업비 유지 문제, 독립청사 건립 문제 등 연일 예산(돈)과 관련된 이슈가 터져 나오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최근 KBS청주방송국의 도의회 의정비 인상에 관한 도민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반대의견을 내 놓은 것처럼 이제 도의회가 민의를 먼저 생각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