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송기은 삼성화재보험 RC

지난 주말에는 홀로 제법 커다란 등짐을 꾸려 짊어지고 지리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아니 비워내기에 버거운 것들이 내 가냘픈 두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떠나는 버릇으로 자리잡은 지 여러 해가 된다. 때로는 당일로 또는 1박2일이나 2박3일로 멀고도 험한 능선을 종주하기도 한다.

내게 지리산은 단순한 산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으로 다가온다. 수 많은 생명이 이 산에 깃들어 삶을 영위한다. 매년 10월 셋째주 토요일에는 아주 작은 대피소(산장)에서 지리산 위령제가 밤이 깊어 열린다. 6·25 민족 상잔의 비극에 희생된 모든 영혼과 뭇생명들, 그리고 지난 볼라벤 태풍의 강타로 쓰러져 생을 마감한 크나큰 주목들까지 다 위무의 대상이다.

해가 지면 여기저기서 온갖 산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마치 납량특집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으스스하기도 하다. 지난 4월에 홀로 이른 아침 산행을 하다가 어둠 속에서 곰의 킁킁거리는 콧소리와 바삭거리는 발자욱 소리를 듣고 랜턴을 끄고 가만히 선 채로 산비탈로 달아나던 반달곰과의 해후를 무사히 마친 적도 있었다. 밤이면 무수히 쏟아져 내릴듯한 미리내는 넓은 내가 되어 밤을 새워 흐르고 그렇게 온 산에는 온생명이 깃들어 평화를 함께 나눈다.

작금 우리의 사회 현실을 본다. 이건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보다 낫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다.

사자도 한 번 사냥해서 배를 불리면 2~3일은 쉬었다가 사냥을 나가는데 천민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이 나라에는 동물세계의 약육강식을 능가하는 부자감세가 있고 서민의 주머니를 터는 각종 세금은 나날이 높아만 간다. 망국의 구한말보다도, 또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이 노래했던 ‘탐진촌요’나 ‘고시’의 가렴주구에 견줘도 훨씬 심각한 총체적 난세로 진단하는 학자의 칼럼에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민족 정기라는 말은 입에 담기조차 차마 부끄러워진지 오래이고, 사회 각 구석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프랑스의 드골은 우리보다 훨씬 짧은 나찌 점령하에도 6000여명을 사형 집행했고, 수 만 명을 감옥에 쳐넣으며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 용어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된 사례라 하겠다. 헌법 전문에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3·1만세혁명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과 그 후예들이 여전히 정치와 요직을 버젓이 두루 차지하고 또한 승계되는 실정이다.

아! 이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남과 북의 통일을 논하기에 앞서 남·남 갈등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가 우리 민족 최대의 시대와 역사의 요청인 통일의 전제 조건이라 여겨진다. 그 한가운데에 여전히 우리가 올 봄을 떠나보낼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가 되는 세월호 사건이 있다. 한 점 의혹없이 밝혀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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