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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큰 아버지의 소천 후, 제 부친에게 전해온 2권의 사진첩이 부친의 방에 보관돼 있었는데 최근에 그 사진첩의 존재를 알게 되어 펼쳐보게 됐습니다.

그 중 오래된 사진첩의 첫 장의 사진인 86년 전 조부의 구세군 사관학교(신학교) 입학식 모습은 제게 경외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제 조부, 허원조 사관(목사)은 1902년 5월 8일 경남 고성군 대가면 유흥리에서 제 증조부 허정현(1873년 10월 20일)의 장남으로 출생했습니다.

그리고 1928년 10월, 구세군 사관학교 19회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다들 아시는 구세군 자선냄비기 처음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제 조부는 사관학교 입학 전에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시면서 갖고 계시던 카메라로 많은 사진들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단 2권만이 현재 남아 제 부친께 남겨졌습니다. 제가 6살이던 1978년 9월 3일에 조부께서 소천하셨기 때문에 저는 조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주위에서 제 조부는 키도 크고 호인이셨다는 말만 들었을 뿐, 사진을 보기 전엔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진들을 보며 부친께서 제게 전해주시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조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들으니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첩을 한 장 더 넘기니 1922년 1월에 촬영한 조부의 약혼식 사진이었습니다.

제 조모 김옥녀 사관은 1905년 7월 19일 충북 옥천에서 김재영 집사의 장녀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3년 이 되던 1925년 1월 결혼을 하셨습니다.

제 부친이 1945년에 막내로 태어나셨으니 결혼 후 23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지금이야 디지털 사진의 메타 값이 저장되어 있으니 언제 촬영한 사진인지 알 수 있지만 인화된 사진엔 그런 정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조부의 기자정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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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사진엔 낙서처럼 일자들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부친께서 조부에 대한 기록들을 노트에 적어 두었기 때문에 사진의 일자를 보면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친께 조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 할 정도로 정말 안타까운 일도, 그리고 감동적인 일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이렇게 조부의 사진첩을 SNS와 제 개인 블로그에 정리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부의 사진과 부친의 노트를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 그 분들의 삶의 흔적을 제 자녀들에게 전해줘야 할 책임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 옛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조부께서는 이름과 함께 사진을 제게 남기셨습니다.

그 사진들은 요즘 메모리로 촬영하는 사진과 달리 필름이 갖고 있는 향수와 감성을 사진을 통해 조부의 흔적들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런 조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요? 저 역시 대전의 소극장 연극들을 사진으로 재능기부를 3년째 하고 있으며, 아마추어이지만 특수학교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사용할 수학교과서의 사진도 촬영했습니다.

대전의 소극장의 어려운 현실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만 3년째 하니 이젠 제법 많은 분량의 소극장 연극사진들이 쌓였습니다. 단순히 한 장의 사진일 수 있겠지만, 쌓이고 모여 시간이 흐르면 바로 그것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조부께서 남기신 2권의 사진첩은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것'임을 증명합니다. 왜냐하면 순간에 사그러질 추억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손자인 제게 남기신 사진첩은 그 자체로 이미 '순간에서 영원'한 역사로 승화됐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10월 11일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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