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필 편집부장

여자들은 다 아는데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게 있다. 44, 55, 66이라는 여성복 사이즈다. 여성들에게 '66(통통)은 현실, 55(보통 체격)는 노력, 44(말라깽이)는 로망'이다. 흔히들 20대 젊은 여성은 '44'로 늘씬 사이즈이고 아줌마는 '77' 펑퍼짐 사이즈라고 한다. 체형을 두고 벌어지는 이 오래된 논란은 '여자' ‘아줌마’라는 고유명사를 비하하는 모독이다. 남자들에게 키와 가슴둘레와 엉덩이는 단순한 수치(數値)일 수도 있지만 여자들에겐 수치(羞恥)가 될 수도 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탈무드에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사랑과 신은 이퀄(equal)이라는 것이다. 그녀들도 한때 딸이었고 처녀였고 내로라하는 여자였다. 단지 어머니가 되면서 모든 걸 내려놓았을 뿐이다. 우리는 엄마를 얻는 대신 여자를 잃었고, 여자를 잃는 대신 아줌마를 얻었다. 동시에 부끄러움도 잃었다.

아줌마는 여자보다 강하다. 아줌마는 아저씨보다 강하다. 결혼을 해서 굳은살을 얻었고, 세월이 굳어 똥배를 얻었다. 물론 이것의 원죄는 남자다. 만약 그대, 남자가 백마 탄 왕자였다면 아줌마는 신데렐라가 될 수도 있었다. 아줌마의 꽃무늬 몸뻬 바지는 아가씨의 스커트보다 멋지다. 아줌마 파마는 아가씨의 깻잎머리보다 정겹다. 옷에 밴 김치냄새는 향수보다 달다. 아줌마의 굽 없는 신발이 아가씨들의 킬힐(Kill Heel·10㎝ 하이힐)'보다 섹시하다. 칼질한 얼굴보다 초승달 같은 눈썹, 마늘쪽 같은 코, 앵두 같은 입술을 지닌 아줌마가 이쁘다. 양복점 아내는 나쁜 옷을 입고 구둣방 안주인은 나쁜 구두를 신는다고 했다. 생긴 게 수수할수록 향기는 짙은 법이다. 장미도 꽃모양이 화려하거나 색깔이 요란한 건 향기가 부족하다.

아내는 20년째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내 안에 아내가 있다. 그녀는 새처럼 펄럭인다. 달처럼 파릇파릇하다. 우심방으론 속삭이는 소리, 좌심방으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의 시름은 사치가 아니다. 이 시대의 파리한 얼굴일 뿐이다. 아내는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소리 내어 운다. 자식이 깨지 않게 소리 낮춰 운다. 비운의 데시벨(decibel)이다.

이 시대 아줌마들은, 가난함을 알고도 고단한 척 하지 않는다. 덜 행복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들꽃처럼 피어 풀꽃처럼 하늘거린다. 잡목 같은 사내를 우듬지로 키워낸다. 그러니 아줌마들의 사랑은 열정, 열애, 열꽃, 나르키소스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우개는 시간이라고 했다. 방황하던 시기에 빨리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빨리 죽고 싶지 않아야 할 끈이 생겼다. 죽어서는 안 될 명분도 생겼다.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에서 딸로, 아내로, 엄마로, 아줌마로 변신한 아내에게서 향기로운 멀미가 난다. 화장을 끝낸 아내가, 나비가 되어 아침 속으로 걸어간다. 아줌마인 그녀에게, 기어코 팔불출이 되고야 말 터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