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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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25)

임사홍이 청산유수 같은 구변으로 말을 계속하였다.

"그 당시 폐비 사건의 내막이 세상에 소문나기는 폐비께서 후궁들을 심히 질투하시고 용안을 할퀴어 손톱 자국을 내신 때문이라고 하였으나 실상은 그와 다르옵니다. 아까도 아뢰었지만 폐비께서는 경국지색이셨고 또 처음부터 왕비로 간택되신 것이 아니라 숙의(淑儀)로 계시다가 전하를 잉태하신 후 왕비로 책봉되셨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선망과 질시를 한 몸에 받으시게 되고, 고부(姑婦)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틈타서 정씨와 엄씨가 전언 두대와 봉보부인 백씨, 예종대왕의 후궁 권귀인과 결탁하여 인수대왕대비께 없는 사실은 날조하고, 있는 사실은 침소봉대하여 폐비를 참소하니 마침내 대왕대비께서는 성종대왕께 폐비와 별거(別居)를 명하시기에 이르렀고, 성종대왕께서는 불효가 두려우셨던지 이태동안이나 폐비를 잊으신 듯 찾지 않으시다가 어느날 밤 별안간 내침(內寢)을 하시니 폐비께서 그동안 버림받았던 비분(悲憤)하고 원통한 생각에 이리저리 몸을 피하시며 앙탈을 하시다가 어둠 속에서 뿌리친 손길이 대왕의 눈두덩을 스친 것이 그만 화근이 되고 말았다 하옵니다. 성종대왕께서는 불쾌하셨겠지만 폐비께서 고의로 용안을 할퀴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덮어두려고 하셨는데, 정씨와 엄씨가 낌새를 알아 가지고 폐비께서 성종대왕을 할퀴어 손톱자국을 낸 것으로 침소봉대하여 대왕대비께 참소를 하니 대왕대비께서는 이때다 하고 폐비께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종대왕을 핍박하여 드디어 폐서인(廢庶人) 처분을 내리셨던 것이옵니다."

"내가 대왕대비마마께 내 어머님을 폐한 사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대비마마께서 용안의 손톱자국 운운하시며 일언지하에 말문을 막아 버리시던 일이 생각나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며느님 왕비를 쫓아내려고 첩며느리들과 짜고 꾸민 모략극이었구려."

"그러하옵니다."

임사홍은 왕이 자기 말을 전적으로 믿어 주는 눈치에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전하께서 유사(有司)에 명하시어 당시의 사책(史冊)에 용안의 손톱 자국이란 기록이 남아 있는지 상고하여 아뢰게 하시면 진위(眞僞)를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신이 속단하기는 어렵사오나 아마도 성종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정사(正史) 기록에는 용안의 손톱 자국이란 말이 없을 것이옵니다. 폐비께서 폐위되신 것이 기해년(성종 10년)인데. 바로 그 이듬해 궁중의 제일 웃어른이시던 세조대왕비와 인수대비께서 서두르셔서 그때 숙의(淑儀)이시던 영원부원군 윤 호의 따님 윤씨를 급히 계비(繼妃)로 책립하였으니 그분이 지금 전하의 모후 자순대비(慈順大妃)이십니다마는 대비마마들께서는 혹시 폐비께서 복위되실까 두려워하여 그렇게 서둘러 계비를 책립하였던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알 만하오. 그리고 또 무슨 일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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