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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파 초월한 독특한 작품세계

[피카소와 천재화가들]
앙리 루소作 ‘노트르담’

나운규 기자 sendme@cctoday.co.kr 2014년 10월 03일 금요일 제3면     승인시간 : 2014년 10월 03일 00시 00분
   
 
  ▲ 앙리 루소 / 노트르담 / 1909 / 캔버스에 유채 / 327.7×41cm. This exhibition has been organized by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앙리 루소는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프랑스 라발에서 태어났다. 파리 세관에서 세관원으로 일을 했으며 49세가 돼서야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앙리 루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어느 유파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서양미술사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유명한 작가다.

앙리 루소는 동시대 인상파들이 그린 화려한 파리의 북적이는 일상이나 풍경을 그린 작품들과는 달리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파리 골목의 길모퉁이나 번잡한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느긋한 휴식이 있는 고요한 풍경을 자주 그렸다.

그중 ‘노트르담’은 그가 즐겨 거닐던 '배가 떠있는 세느강'을 그린 것으로 항상 그랬듯이 검은색 옷과 모자를 쓰고 있는 자신을 중앙 하단에 작게 그려 넣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창안한 ‘풍경초상’이다. 또 가난했던 앙리 루소는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독학으로 주말에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일요화가’로도 알려졌다.

뒤늦게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다는 것과 어색한 인체비례, 환상과 사실의 색다른 조합 등의 이유로 조소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변방의 아웃사이드였던 앙리 루소는 인생에 큰 전환기를 맞는다.

그것은 1908년 당시 파리에서 유명 작가들이 모여 사는 ‘바드라아파트’에서 피카소가 앞장서서 ‘루소의 밤’이라는 성대한 파티를 열어는데 이 날 초대된 각계의 예술가들이 루소의 바이올린 연주와 아폴리네르의 루소를 위한 즉흥시 덕분에 호의를 보냈다고 한다. 그곳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공감을 형성하면서 비로소 루소는 인정받게 된다.

<해설:김민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

나운규 기자 sendm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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