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 사회팀장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알기나 할랑가?', '아~ 모르면 호로새끼들이제….'

-영화 '명량'의 마지막 대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1597년 명량에서 단 하나뿐인 조국 '조선'을 구한 이름없는 병사들의 바램을 지키지 못했다.

또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어명을 어긴 채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전투에 나서 330척에 이르는 일본 수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족 정신을 승계하지 못했다. 이순신·권율 장군을 비롯해 수많은 병사·의병들이 목숨을 버리며, 지켰던 조선은 임진왜란 종료 313년 만인 1910년 일본과의 한일합방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이후 조선은 처참한 식민지로 전락해 남성들은 전쟁터나 탄광 등지로 끌려갔고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 노예로 사는 지옥같은 생을 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시 조선의 관료, 군인, 언론인, 학자, 예술인, 종교인 등 사회지도층 대부분은 매국에 이은 친일 행각으로 우리 민족의 얼을 빼앗고, 강토를 유린하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이 가운데 관동군 헌병대에서 대공사찰을 담당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는 일에 앞장선 김창룡을 포함해 김석범, 신현준, 백홍석, 송석하 등 일본군이거나 경찰 출신으로 전형적인 친일 인사 28명이 아직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특히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 육군 대위로 근무하다 한국전쟁 발발 후 제7사단장을 거쳐 제2군단장 재직 시 지휘 실수로 중공군의 포위를 허용, 군단 전체를 괴멸시켰고, 현리 전투에서도 제3군단을 해체케 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군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를 자초한 유재흥 씨 역시 2011년 11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됐다.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이들 친일 인사들이 시대의 아픔을 뒤로 하고, 국립묘지인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현행법상 군이나 경찰 등 경력 요건이 충족되고, 전과 등의 흠결이 없다면 국립묘지 안장을 막을 근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안장된 후 서훈이 취소됐더라도 유족이 동의하지 않는 한 강제 이장 역시 불가능한 것이 2014년 대한민국의 법이다.

아직도 살아있는 친일 인사들이 적지 않고, 이들이 사망할 경우 군이나 경찰에서 활동한 경력이 인정된다면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잘못된 이 악법을 고쳐야 하지만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친일 인사나 이들을 보호하는 세력들은 "친일은 분명히 잘못이지만 이후 한국전쟁 등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현충원 안장은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광복 후 아무리 높은 공적을 쌓았더라도 친일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도, 용서할 수도 없는 죄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맞서 싸웠더라도 이는 친일의 죄를 스스로라도 용서받기 위한 행위일 뿐, 절대 그 이상의 관용을 베풀 수 없는 문제다.

이는 애국애족의 정신을 뿌리내리게 하고, 다시는 '한일합방'이라는 민족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거치면서 권력을 장악한 친일 인사들의 입맛에 맞게 제정된 국가유공자법과 국립묘지법은 하루빨리 개정돼야 할 악법 중에 악법이지만 아직도 넘어가야할 산은 높기만 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나설 때다. 더 이상 비상식적인 국가, 비논리적인 법이 제정되는 것을 좌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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