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따라바람따라 증도 (曾島)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를 가다

▲ 태평염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섬으로, 2007년 12월 1일 청산도와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 목포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30㎞ 지점에 있으며 면적 28.19㎢의 제법 큰 섬임에도 최고봉은 겨우 200m인, 대부분이 구릉지와 평지로 이루어진 이 섬은 증도대교가 놓이면서 섬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된 곳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명소 2위를 차지한 섬이다. 언제 누가 조사했냐고?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다. 그만큼 의미 있는 곳이 많다.

증도 일몰이 보고싶어 집을 나섰다. 하지만 날씨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분명 기상청에서는 증도 지역이 맑음이라고 예보를 했건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안개인지 구름인지 허공은 회색으로 짙어졌다. 증도면소재지에 도착해 일몰을 포기하고 민박집에 짐을 푼 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전망이 좋기로 소문난 상정봉에서 멋진 일출을 보길 기대하면서. 그러나 아침에도 날씨는 변함이 없었다. 상정봉을 올라도 보이는 건 안개가 만든 잿빛 커튼뿐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국가사적 274호로 지정된 송원대(宋元代) 해저유물 발굴해역을 찾았다. 비록 지금은 푸른 바다밖에 보이는 게 없지만 이 일대 바다 속에서 600여 년 전의 유물 2만 3024점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의 지역이 되었었다. 보물섬이란 별칭이 증도에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어서 찾은 기독교 복음 선구자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1935년 증도면 중동리에 처음 교회를 세우고 복음 전파를 시작한 문 전도사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의 품으로 인도하다 순교했다. 기념관 인근에는 순교지도 있다. 그래서일까? 증도의 90% 이상이 기독교 신자다. 그게 어느 종교든 순교자라는 말 앞에는 옷깃이 여며진다. 자신의 생명조차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용기에 감탄하고, 그런 가치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증도에 오는 사람들이 한번은 꼭 들리는 짱뚱어 다리는 거대한 갯벌 위에 놓여졌는데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에서 펄떡거리는 짱뚱어를 볼 수 있다. 짱뚱어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훌치기낚시다. 낚시 바늘을 여러 갈래로 달아 훌쳐서 잡는 방식으로, 갯벌에서 기어 다니는 짱뚱어 부근에 바늘을 던져 낚아채 듯 낚시를 한다.

낚시를 하지 않아도 그 둔한 몸으로 질척거리는 갯벌을 뛰어다니는 걸 보는 게 재미있고 신기하다. 저들은 언제부터 저 갯벌에 터를 잡았을까? 돈이 없어도 짱뚱어는 수만 년을 잘 살아오고 있다. 그들의 삶을 방해하는 건 오히려 살아있는 갯벌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인간이다. 짱뚱어가 가르쳐준 삶의 지혜를 뒤로하고 갯벌 도립공원을 찾았다. 신안 갯벌 도립공원은 증도 부근의 여러 섬 갯벌을 묶어 한국 최초의 갯벌공원으로 지정한 것을 일컫는데 증도가 그 중심에 있다.

특히 증도의 우전해변의 갯벌은 바닷물이 빠지면 굳어지는 고화현상을 보이고 그 뻘밑에 모래를 간직하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어 학술적 지리적 가치가 높다. 갯벌공원 중심지에는 슬로시티와 갯벌의 가치를 알리는 슬로시티센터와 신안갯벌센터도 있다. 고운 모래을 자랑하는 우전해수욕장, 한반도 해송숲도 증도의 자랑거리다. 해송숲의 진가는 섬에서 가장 높은 상정봉에 올라가서 봐야 한다. 거기서 보면 소나무숲이 한반도 모양으로 보인다.

특히 태평염전은 꼭 봐야 한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일염 생산지인 태평염전은 연간 1만 6000t을 생산하는데 이는 전국 생산량의 6%에 이른다. 1953년 염전을 만들어 전쟁 피난민들의 생계지원에도 한 몫을 했고, 염전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등록문화재 360호) 되어 있다. 태평염전이 운영하는 소금박물관은(등록문화재 361호) 소금의 역사와 문화 등 소금에 관한 정보를 보고 느낄 수 있으며, 박물관 뒤 태평염전에서 수차 돌리기, 소금채취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증도에는 5개의 모실길을 지정하여 돌아보기 좋도록 꾸며놓았다.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10㎞), 보물선 순교자 발자취길(7㎞), 천년의 숲길(4.6㎞), 갯벌공원의 길(10.3㎞), 천일염 길(10.8㎞) 등인데 취향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슬로시티(Slow City)라고 자랑하는 증도에 왔으니 슬로시티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 되겠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느림 운동은 빠른 걸 강조하는 우리 사회 풍조의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자는, 진정한 내 삶을 찾아가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①자연 생태 보호 ②전통문화의 자부심 ③슬로푸드(제철ㆍ제때의 식재료와 유기농법) 활용 ④특산품, 공예품 지킴이 ⑤지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진정성 유지 등의 지침을 갖고 있다. 결국 느리게 살기는 인간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오래 갈 미래를 위해 자연과 전통 문화의 보호에 직결된다. 슬로시티 지정을 계기로 지정 지역들이 삶의 질을 향상 시키기 보다 지정 자체를 관광홍보 수단,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돈벌이 수단으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갖는다.

글 =민병완 객원기자·사진=나기옥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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