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경철수 충북본사 정치경제부장

지난주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대천해수욕장에서 보내려던 여름휴가는 12호 태풍 나크리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했다. 서해로 가려던 휴가지를 급하게 동해로 수정하면서 결국 여름휴가 행선지는 부산으로 결정됐다. 태풍이 여름휴가 행선지마저 바꿔 놓은 것이다. 태풍 나크리는 서해에서 사라졌지만 뒤늦게 11호 태풍 할롱이 일본을 거쳐 동해로 빠져 나가면서 지인들 중 일부는 휴가지를 서해로 급하게 바꿨다는 얘기까지 전해 들었다.

일명 ‘다이어트 휴가’라 이름 지은 이번 여름휴가는 부산 시티투어를 위해 4시간이 넘는 자가용 운전을 각오해야 했다. 다소 피곤함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즐거워하는 두 딸과 아내를 보니 마음만은 가벼웠다. 부산 해운대를 거쳐 광안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부산 시티투어를 통해 부산의 명물과 명소를 찾아다니며 체험하는 일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해운대 해변가를 가족과 함께 거닐며 넘실거리는 파도를 피해가며 좋아하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니 일상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되는 듯 했다.

광안리 해변가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식사 전 샤워를 한 뒤 무심코 튼 TV뉴스에선 오전 내내 우리가족이 시간을 보낸 해운대에 폐목이 덮쳐 복구 작업이 한창이란 소식이었다. 여름 성수기를 보내야 할 해수욕장이 폐장 분위기란 소식에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모처럼 가족여행에 닥칠 불운은 피한 듯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광안리 해수욕장에선 늦은 밤까지 ‘국제 디제이 페스티벌’ 등을 함께 즐기고 야간조명이 아름다운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해변가 숙소에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부산의 명소라 할 수 있는 국제시장과 부산자갈치 시장, 야시장, 보수동 헌책방 골목, 동백섬, 해양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느낀 것은 관광도시 부산에 걸맞게 정직한 물가와 친절한 시민들의 미소였다. 청주에 수암골이 있다면 부산에는 피란민촌으로 형성된 감천 문화마을이 있었다. 마지막 달동네라 할 수 있는 청주 수암골이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지기 까지는 공공미술프로젝트 일환으로 골목골목에 그려진 벽화가 한몫 했다. 그런데 부산 감천 문화마을 역시 가파른 골목골목 사이로 그려진 어린왕자 등의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여름 성수기, 바가지 요금이라곤 느낄 수 없는 너무도 저렴한 숙박료에 관광지마다 눈에 띄는 자원봉사자와 조합원들의 친절함이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 부산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송도 야영장에서 무료로 숯불까지 피워주며 바비큐 그릴까지 흔쾌히 빌려준 야영장 관리인 아저씨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휴가기간 극장에서 만난 영화 ‘명량’과 ‘해적’도 적잖은 감흥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 후 웃을 일이 없는 한국인들에게 성웅 이순신을 다룬 영화 ‘명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도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하는 한국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영화이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요즘 무엇이 비정상의 정상화인지를 알게 해 준 여름휴가였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 내겐 너무도 감사한 일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나미 비정상의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아마도 휴가지에서 만난 고마운 분들의 역할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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