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 누구인가] 서산·태안 새누리 김제식
벌금 못낸 상인 도와 유명세
공직 마감후 서산서 변호사 개업
마을변호사·장애인협 고문 맡아

▲ 김제식 당선인의 선거 유세 모습.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개천에서 용났다’는 속담의 전형을 보여준 김제식 당선인은 1957년 7월 10일 당시 서산군 대산면 운산리에서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 당선인은 대산중학교 다닐 때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나온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 배 타고 2시간 반 거리의 인천 유학길에 올랐다.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김 당선인의 부모는 갯지렁이를 잡아 어렵게 학비를 댔다. 객지에 나온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부모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한 김 당선인은 제물포고를 3등으로 졸업 한 뒤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사법시험 24회로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초임 발령 받은 김 당선인은 이후 서울지검 부장검사, 광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대전지검 논산지청장, 부산지검 동부지청장까지 23년 간 검사로 한길을 걸었다. 그러나 법의 잣대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던 김 당선이었지만 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이웃들을 정으로 보듬기도 했다.

실제 목포지검 지청장이던 2005년 벌금 70만원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힐 위기에 처했던 고구마 장수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의 고구마를 지청에서 구입해 도움을 주자고 제안, 노역을 피할 수 있게 했다. 이 미담은 대검 홈페이지에 올랐고,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또 광주지검 차장검사였던 2007년에는 금호1동사무소가 어려운 주민들은 필요한 만큼 쌀을 퍼갈 수 있게 동사무소 현관에 설치한 ‘사랑의 뒤주’에 매월 쌀 20㎏의 5포대를 남몰래 기부하다 적발(?)되기 했다.

때론 법 앞에 엄격하게 때론 가슴 따뜻한 검사로 23년의 공직을 마감한 김 당선인은 ‘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북쪽에서 온 말은 북풍이 불면 귀를 북쪽으로 세워 소리를 듣고, 남쪽에서 올라온 새는 남쪽을 향한 가지에 둥지를 튼다)’라는 말을 새기며 고향인 서산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고향에서 나서 자라고 검사로, 또 변호사로 많은 혜택과 은혜를 조금이나마 환원하기 위해서다. 서산시 음암면·태안군 이원면 마을변호사를 시작으로 서산태안장애인복지관장애인협회, 서산태안개인택시운송조합, 서산태안약사회, 숙박업소 서산태안지부, 미용사협회 등 10여단체의 고문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서산=박계교 기자 antisof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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