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우리 사회를 읽는 키워드는 뭘까? 멀리 보면 차기 정부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회변화의 흐름-시대정신을 주시하는 이유다.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난날 압축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사회적 각성은 이를 확인하는 하나의 단서다. 세계 10위권 한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요즘 국민은 너무나 외롭고 피곤하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 그 자체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대낮에 생떼 같은 아들딸들을 한꺼번에 바닷물 속에 수장시켜 버리는 모습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확인했다. 국가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허탈감과 분노는 그 무엇으로도 계량하기 힘들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원전 비리에서도 그랬었다. 부품 생산에서 검증, 납품까지 원전 가동의 모든 과정을 장악하고 있는 '끼리끼리 먹이사슬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칫 국운이 거덜날 수 있는데도 전문가 그룹은 '원피아'를 구축하고선 자신들 잇속챙기기에 바빴다. 관피아, 정피아가 설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은 무척 고질적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원인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사회 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특정 개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기관은 물론 산하기관 그 어디를 가리지 않는다. 청와대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 핵심 인사 서열 10위 가운데 8명이 부산·경남 출신이다. 인사나 정책 모두 그들만의 시각에서 보면 국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구조인 까닭이다. 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후보 세 차례 탈락이라는 불명예도 바로 그런 인식의 틀에서 나온 산물이다.

국민을 주체가 아니라 통치수단 쯤으로 여긴다는 건 경계할 일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무능과 무기력, 그리고 무책임의 실체들을 낱낱이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엊그제 국정조사특위에서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이건 국가도 아니라는 한숨이 나올 정도다. 어린 생명이 차가운 바다가운데 갇혀 있는 데도 해경이나 청와대 모두 마찬가지였다. 구조는 뒷전이었다. 그저 윗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정황이 그대로 밝혀졌다. 기민하게 움직였으면 대다수 생명들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는 건 두고두고 통탄할 일이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 눈물 담화에서 '국가개조'를 약속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선 대통령의 눈물 마케팅이 위력을 얻어 선전했다. 그러나 적어도 세월호 이후 달라진 것은 아직 하나도 없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총리가 없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국가적 수치다.

'국가 개조'라는 약속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 받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석달이 다 되어 가도록 무엇 하나 밝혀진 게 없다'는 유족들의 한탄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지지도가 추락하고 있다. 벌써 레임덕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정운영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국민적·시대적 요구에 적합한 차기 대통령감은 누구인가. 미리 관심을 가질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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