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
다비다의 집 노인요양보호사 이동기 씨
불우한 가정에 노숙인 생활...우여곡절 끝 복지시설 입소
시설 도움받아 자격증 취득...“지금 어느 때보다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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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다의 집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동기 씨. 김영준 기자

어려움을 겪어본 이가 남을 어루만질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꽃은 진창에서 피어오른다’는 옛 말과 같이, 어두운 날을 이겨내고 남을 돕는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노인치매요양원 ‘다비다의 집’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동기(33·사진) 씨. 불과 반년 남짓 전만 해도 노숙인재활시설 ‘자강의 집’에서 도움을 받던 노숙인 이었지만 지금은 당당한 요양보호사로 거듭났다.

거동이 불편한 치매 노인들의 수발을 들고 있는 그는 “간혹 힘들 때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여관방과 피시방 등을 전전하며 세월을 흘려보낼 때 힘들었던 과거를 비춰보면 지금은 그저 보람차다는 것. 하루하루가 벅찬 이 씨에게도 어두운 과거는 있었다.

어릴적 가출한 아버지와 장애를 가진 어머니, 그저 “돈을 빨리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학창시절이었다. 2000년 고향인 강원도 평창을 떠나 대전으로 왔지만 주어지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밥 배달과 유흥업소 웨이터, 택배 등으로 소일했지만 기대와 달리 돈은 모이지 않았다. 실의에 빠져 술과 담배, 검퓨터 게임에 열중했고, 건강은 나빠만 갔다. “그 때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놔 버렸어요”라고 할 정도로 피폐했던 삶이었다.

2011년 1월에 이르러 그를 기다린 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빈곤.

180㎝의 그가 48㎏ 깡마른 몸이 될무렵 그는 유치장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절박함에 파출소로 향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됐으면 편의점이라도 털었을 겁니다”라던 이 씨는 이를 계기로 자강의 집으로 흘러들었다. 다행히도 자강의 집에서 겪은 2년 세월은 그를 변모시켰다.

200여명 노숙인과 동고동락하며 ‘나만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배웠고, ‘다시 태어나야겠다’는 의지를 맘 속에 세기게 됐다. 이를 눈여겨 본 자강의 집은 지난해 이 씨에게 천금같은 기회를 제공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학원비를 지원한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도 졸았는데, 요양보호사 시험공부할 때는 단 한 번도 존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시험에 합격했다”는 게 이 씨의 회고다. 자립, 그리고 아픔에 대한 치유의 길로 들어선 그. 이 씨는 “내가 아픔을 이겨냈듯, 다른 이가 아픔을 이겨낼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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