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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 섬’… 물빛도 도도하고 바람 빛깔도 당당하구나

[섬따라 바람따라] 29.소안도 (所安島)
전남 완도군 소안면 해안선 길이 42km의 황홀한 풍광의 섬
독립유공자 20명 배출…저항과 독립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자유의 기운 감돌아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4년 05월 23일 금요일 제11면     승인시간 : 2014년 05월 22일 20시 50분
   
 
  ▲ 가학산에서의 전경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 지난 3월 25일, 소안항에 내리니 범상치 않은 문구가 새겨진 돌비석이 가장 먼저 나를 맞았다. 잠시 발을 멈추고 글귀를 다시 한번 읽었다. 옷깃을 여몄다. 들은 대로 이 섬에는 저항과 독립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자유의 기운이 섬 전체를 휘감고 돈다. 물빛도 도도하고 바람 품세도 당당하다.

일제 강점기에 함경도의 북청, 부산의 동래와 함께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소안도. 이 외딴 섬에 항일운동이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사립 소안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소안학교는 주민의 항일의식을 일깨우는 샘물이었고, 진원지였다.

사연은 이렇다. 1905년 궁납전이었던 소안도 토지를 이기용 자작이 강탈해 사유화하자 소안도 주민들은 1909년 '전면토지소유권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후 무려 13년의 긴 법정투쟁 끝에 1922년 2월 승소하게 된다. 토지를 되찾은 섬 주민들은 기념으로 소안사립학교를 세운다. 당시 이 학교는 인근 섬은 물론 제주도에서까지 학생들이 몰릴 만큼 인기가 있었다.

학교를 세우고 가르치고, 그리고 배우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1924년 일으킨, 흔히 말하는 '2차 노농대성회 사건'을 시작으로 많은 소안도 사람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돼 감옥을 큰집처럼 드나들었다.

1930년까지 이 작은 섬 소안도 관련 신문기사만 200건이 넘었고 등장인물도 수백 명에 달했다. 당시, 감옥으로 끌려간 주민이 있으면 섬에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생각하며 한겨울 추위에도 불을 때지 않고 잘 만큼 연대와 충혼의백(忠魂義魄)의 기개를 드러냈고, 경찰과는 말을 하지 않는 불언동맹으로 일제의 폭압에 맞섰다. 1927년 일제는 해방운동의 저수지였던 소안학교를 강제 폐쇄시켰다.

   
▲ 미라리 해수욕장

이 시기 주민 6000여 명 중 800명 이상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찍혀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은 점만 보아도 저항의 열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리라 (소안항일운동기념관 홈 페이지 참고). 이 작은 섬에서 독립유공자 20명을 배출한 것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항일의 성지라 할 만한 곳이다.

소안도의 이런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2012년부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완도군에서는 2013년 주민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안도 나라사랑 365일 태극기 섬 선포식'을 개최했다. 그 이후로 모든 공공기관은 물론 집집마다 사시사철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음은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나는 먼저 비자리에 있는 항일운동기념탑을 찾았다. 1990년에 세워진 탑 뒤로는 거대한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탑 주변에는 기념관이 세워지고 소안학교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잠시 묵념을 하고 이 땅을 지키실 영령들을 생각했다. 그분들은 지금 저 하늘에서 자신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투쟁결과를 만족하게 내려다보고 계실까? 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렵게 쟁취한 독립된 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렸고, 반성 없는 일본은 집단자위권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재무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집단자위권. 인근의 나라로 인해 자기 나라에 위험이 처하면 남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주둔할 수 있게 하는 이 조치는 결국 자위라는 명목으로 남의 나라를 강점할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미국도 여기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나라의 전시작전권조차 넘겨주고 있을 만큼 그 믿음은 철통같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결코 우리나라를 돕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우리 뜻과는 관계없이 일본을 방어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정책을 봐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최우선 국방 정책은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냉전시대에 옛 러시아인 소련과의 전쟁을 대비해 소련 인접국들과 북대서양 방위조약을 맺어 유럽에 1차 방어선을 확보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소련의 태평양 접근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 지원에 적극 나섰다.

일본은 특이한 지리적 특성을 가진 나라다. 영토가 러시아의 사할린 밑에서 대만 인근까지 길게 뻗어 있어 소련과 중공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미국은 일본을 이용해 두 나라의 태평양 직접 진출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다. 진주만을 침략한 적대국 일본을 미국이 감싸 안은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변한 게 없다.

집단자위권을 주장하는 일본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 냉철한 국제정세 속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게 많은 경우를 통해 입증되었으니 말이다.

항일의 성지 소안도에서 최근의 일본 행태와 세계 정세를 보는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음은 이런 우리의 현실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항일기념관을 둘러보며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뜻있는 일이리라.

소안도를 간단하게 소개해야 되겠다. 완도군 소안면에 속한 이 섬은 면적이 23.16㎢에 이르고, 해안선 길이가 42㎞에 달한다. 인구도 2700명을 넘으니 작다고 할 수 없는 섬이다. 섬의 풍광도 예사롭지 않다.

월항마을에서는 고기잡이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평일인데다 계절도 계절인 만큼 텅 비어 있었지만 제철이 되어 아이들에게 바다에 들어가 직접 고기를 잡아보도록 하는 건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섬에서 가장 높은 가학산(359m)엘 오르는 것도 추천할만 하다. 섬 정상에서의 조망은 어느 섬이든 버릴 곳이 없지만 가학산도 마찬가지다. 운동기구인 아령처럼 생긴 섬 모양은 가학산에서 보아야 그 멋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소안도를 포함한 그 일원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그 섬의 아름다움이야 일러 뭣하랴!

소안도가 자랑하는 명승지 중에 미라리 해수욕장을 빼놓을 수 없다. 해변을 가득 채운 은행알 크기의 자잘한 돌과 맑은 물로도 인기가 있지만 특히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상록수림과 어우러져 더욱 운치가 있다.

여기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33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해안을 따라 24종 776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길이가 400m에 달한다. 맹선리에는 천연기념물 340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다. 상록수림은 해풍으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도 하고 있다.

소안도 해수욕장 중 진산리 해수욕장도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 중의 하나이다.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려 많은 인기를 끈 드라마 '해신'의 일부 장면이 촬영된 병풍바위 전망대도 멋지다. 탁 트인 조망과 잘 발달한 해식애는 자연의 신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글=민병완·사진=나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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