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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뿌리내린 바위틈 천년송... 아, 쓸쓸함마저 아름답구나

[섬따라 바람따라] 26. 말도 (末島)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4년 04월 11일 금요일 제11면     승인시간 : 2014년 04월 10일 20시 58분
   
 
  ▲ 천년송  
 


항구를 떠나는 배는 고동 소리로 항해의 시작을 알린다. 뱃고동 소리는 이별의 표시이며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신호다.

끝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온전한 끝은 없다. 모든 건 돌고 돌며 이어진다. 순환의 궤도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무상(無常) 위에 발을 딛고 있는 나 자신도 어제에 이어진 오늘을 살지만, 그 나가 늘 같은 나일 수는 없다. 새로운 섬을 찾아 떠날 때마다 기대와 설렘으로 떨리는 이유는 어제와 다른 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3월 6일, 봄기운이 느껴지는 시기에 찾아간 섬은 말도다. 고군산군도 서쪽 끝에 있다고 해서 끝섬이라고도 불리는 이 섬은 전북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에 속해 있으며 0.36㎢으로 아주 작다. 배도 하루에 두 번 밖에 찾지 않는다. 군산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들고 남이 불편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섬을 찾아오는 봄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정도라 판단했다. 더욱이 '끝'이 새 시작점 임을 염두에 두다보니 이 섬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 물 빠진 바위 웅덩이에 갇힌 바다 생물들
비록 잦지 않은 배편이라 하더라도 다른 목적없이 섬을 둘러보기 위한 발길이라면 첫 배를 타고 들어갔다 네 시간 후에 다시 오는 배를 타고 나와도 될 정도의 자그마한 섬임을 감안하면 배편을 탓할 이유가 없는 여행길이었다. 군산항을 출발한 여객선은 인근의 섬을 몇 개 경유한 뒤 1시간 50분 만에 말도에 도착했다.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바지락을 캐는 할머니들이었다. 깊은 이랑을 닮은 주름을 얼굴 곳곳에 새기고 있는 모습이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옴은 섬의 미래를 짐작케 되기 때문이리라. 첫 번째 목표지점인 천년송(千年松)은 물을 것도 없이 찾을 수 있었다.

풀 한 포기조차 기댈 수 없는 집채만한 바위에 홀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에 그리 이름을 붙인 건 주민들의 소나무를 아끼는 마음이고 내 짐작으로는 백년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소나무가 천 년이 아니라 백 년을 살았다 해도 바위에서 그 오랜 세월 생명을 이어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움이었다.

단순히 척박하다는 말로는 소나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도록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

   
▲ 특이한 바위 모습
그 천년송을 마주보고 있는 등대가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크다는 말도 등대다. 깔끔하게 단장된 이 등대는 유인등대로 부근 지역을 오가는 섬들의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이 부근 바다 밑은 대륙붕 형태를 이뤄 물고기의 오감이 좋은데 조기·고등어·새우·갈치 등의 어족이 황해 난류를 타고 찾아오는 4∼5월 성어기에는 어둠이 걷히지 않는 새벽은 물론 늦은 밤 섬을 찾아드는 어선들에게 등대는 특히 좋은 이정표로써 어민들의 생업을 지원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물고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를 덧붙이면,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성어기에만 부근 어장에 몰려오지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일년 내내 이 섬을 찾는다.

   
▲ 습곡지형
이들의 방문을 주민 소득 증대와 연결시키기 위해 군산시에서는 선착장 부근에 12개의 방을 갖춘 민박집을 지어 주민 한 세대당 한 실(室)씩 운영권을 주고 있었다. 이런 제도는 내가 찾았던 여느 섬에서는 보지 못한 제도로 다른 지역에서도 고려해 볼 만한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대에서부터 섬의 능선을 따라 산책길이 나 있는데 끝자락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다다를 수 있다. 섬의 능선을 걸으며 파란 비단을 펼쳐놓은 바다를 즐김은 먼 길을 찾아간 사람만이 느끼는 축복이었다. 기쁨은 또 있었다. 봄을 안내하는 들꽃들은 꽃으로 밝힌 초롱불을 들고 곳곳에서 귀여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 말도 등대
해맑은 분홍노루귀, 노란 복수초, 키 작은 민들레, 이름이 재미있는 개불알풀 등등 그 먼 외진 섬에서도 꽃들은 결코 자신이 할 일을 미루는 법이 없었다. 자연의 순리를 가녀린 꽃잎에 그대로 새기고 있는 들꽃을 보노라면 하늘의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그래 봄은 이 꽃들의 향기를 따라 바다를 건너와 세상에 가득 넘치리니 계절의 아름다움이 아니랴!

능선 중간쯤에서 갈라지는 길을 따라가면 이름도 없는 섬의 최고봉까지 자연스레 발길이 닿게 되는데 정자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주변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져 좋은 전망을 즐길 수가 없었다.

구릉 정상을 이어 만든 능선길은 산등성이에 어찌 이리 넓은 시멘트길이 있으랴 싶게 잘 정비돼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산길에 과속방지턱까지 곳곳에 설치된 건데, 이야말로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 섬에는 제대로 된 식당이 없는 게 아쉬운 점이다.

식당이라 이름 붙은 업소가 하나 있기는 한데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계절에나 문을 열고 내가 간 때는 주인 없는 빈 집을 자물통이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돼말도마을 아랫자락 해변에서는 천연기념물 501호인 습곡구조의 지형을 볼 수가 있다.

이 습곡지형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모양으로 선캄브리아기 지층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특이한 지형은 얕은 바다에 만들어진 퇴적암이 지각운동으로 융기하면서 옆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주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심한 변성과 변형작용에도 불구하고 물결자국 화석과 경사진 층지 등의 퇴적구조를 아직까지도 잘 간직하고 있어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간단한 설명을 겸한 안내판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주민에게 물어 겨우겨우 찾을 수 있었다.

섬의 동북쪽은 갖가지 모향의 자갈들이 제 각각의 독특한 무늬를 자랑하며 해변을 채우고 있어 자연이 만든 수석전시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이런 곳을 수석 동호회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특이한 돌을 주어가는 이들과 실랑이 하느라 골치가 아프다는 마을 주민의 말씀이 괜한 헛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이 섬을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사항이리라.

내가 만난 주민은 그런 식으로 외지인에 대한 탐탁찮은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이 섬이 바다 갈매기의 서식처로 5월 말경이 되면 몰려드는 갈매기로 장관을 이룬다는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게 인간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면 바다 갈매기가 찾아드는 것조차 관심을 갖지 않는 게 갈매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이 섬에는 그 흔한 해수욕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저런 쓰레기만 쌓아 놓고 떠나는 피서객이 없는 게 오히려 섬을 깨끗하게 지키는 한 방법일 수도 있으리라.

돈벌이가 최고가 아니라는 시각을 바꾸면 상황에 대한 해석은 다양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섬을 찾는 여행객은 말도만을 목적으로 여행길에 나서기보다는 인근의 다른 섬도 방문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짠다면 시간과 경비를 아끼는 방법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글=민병완·사진=나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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