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엄이도령(掩耳盜鈴)이라는 중국 고사가 있다. '여씨춘추'에 나오는 도둑의 어리석은 얘기다. 종(鐘)이 너무 커서 훔쳐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도둑은 이를 쪼개서 훔칠 요량으로 망치로 종을 힘껏 후려쳤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러자 도둑은 자기 귀만 막으면 그만인 걸로 알았다. 남들은 도둑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데 막상 당사자는 아니라고 우기는 경우다.

극우로 마구 돌진하는 일본을 보면 그런 심사가 어김없이 드러난다. 일본이 본색을 또 다시 드러냈다. 주변국들이야 어떻든 자신의 귀를 막고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기 일쑤다. 지난 4일 일본은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는 기술을 강화시켰다. 그러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외교청서도 발표했다.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보여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태도와는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는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 박물관을 방문, "역사적 사실에 겸허해야 하며, 역사적 교훈과 사실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으로 세계평화를 실현하고 싶다”고 했다. 일제 때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의 뜻을 담았던 무라야마담화와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던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 때만해도 일본이 역대 독일총리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대인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무릎을 꿇고 참회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사적 죄과를 뉘우치는 최소한의 조치가 나올까 일말의 기대감을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 후 일본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국회에서 아베총리의 발언을 뒤집는 말을 했다.

독도와 일본 위안부 등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가 왜 그토록 갈등 국면으로 치닫는가. 일본 내 양심 세력 목소리는 으레 강경파에 의해 묻히고 만다. 오히려 일본 주류세력은 야스쿠니 참배 등을 통해 침략 역사를 부인하면서 군국주의적 과거를 미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전쟁포기와 교전권, 군대보유 불인정을 명문화한 현행 일본 평화헌법의 해석을 변경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속내가 뻔하다. 그들만의 집단최면 현상을 십분 활용한다. 대다수 일본인들이 한일 과거사에는 무관심한 탓이다. 일본 극우파들이 이런 구석을 노린다. 한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마다 그들은 '트집 잡는 한국, 불평불만 한국'으로 몰아간다.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국민 이목을 딴 데로 돌리는 꼼수다.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았나 착각할 정도다. 괴벨스의 선동적 정치기술은 바로 엄이도령처럼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마비시키는 꼼수에 있었다.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시키는 게 핵심이다. 맹신적인 집단사고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우리 정치판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오버랩 되고 있다. 엊그제 국회에서 야당 대표의 연설 도중에 여당 원내대표가 "너나 잘해"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여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킥-킥"하는 조소가 들렸다. 그들만의 집단최면에 걸리지 않고선 이럴 수가 있나. 국민은 갈등-증오의 정치를 청산하고 상생-민생 정치를 해줄 것을 정치권에 기대한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그밖의 쓴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게 정치의 본령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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