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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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44세이고, 군왕들은 47세다. 그런데 유독 장수한 임금이 있다.

재위기간만 52년(역대 군왕 평균은 19년)에 82세까지 살았던 영조다.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힌 '무수리 출신 후궁의 소생'이라는 콤플렉스도 그에게는 독이 아니었던가보다.

매사 삼가고 조심하며 청빈하게 산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들 한다.

보통의 군왕들이 하루 다섯 번, 12첩 반상의 수라를 들었지만 영조는 거친 현미밥에 반찬 가짓수도 절반이하로 줄이고 하루 세 번만 먹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장수비법은 금주(禁酒)였다. 그는 백성의 주식인 쌀을 가지고 술을 빚는 게 못마땅해 강력한 금주령도 시행했다.

이를 어긴 자는 최대 사형에 처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술자리’ 키워드는 세조가 467건, 태종 167건, 세종이 91건이다.

'술자리' 횟수를 연평균으로 나눠보면 세조가 33.4회, 태종 9.3회, 세종 2.9회, 성종 2.2회 순이다. 그러나 이 역시 챔피언은 영조다. 52년 동안 신하들에게 직접 술자리를 베푼 건 딱 세 차례뿐이었다. 영조만큼이나 술을 멀리한 임금이 또 있다. 세종이다.

그는 경연(經筵)과 주연(酒宴)을 많이 열었지만 '소주 반잔'이 주량일 정도로 술을 멀리했다. 반면에 세종이 사랑했던 신하 '윤회'는 항상 고주망태였다. 열 살 나이에 통감강목을 외운 총명함, 문신(文臣) 최고영예인 대제학에 오를 만한 실력이 없었다면 그는 한낱 ‘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상나라의 주왕과 주나라의 여왕은 술로 나라를 망쳤다.

전한의 진준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술에 취해 살해됐다. 후한의 정충은 여러 장수들을 찾아다니며 술을 먹다가 창자가 썩어 죽었다.

신라가 포석정 술잔치 때문에 패하고, 백제가 낙화암에서 꽃비처럼 주검이 된 것도 술 탓이 아니던가.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장비는 맨손으로 808명을 물리치고 여포 등 쟁쟁한 장수들과도 호적수였지만 술에 취한 사이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술은 사람관계 때문에 마시지만, 그 사람은 술 때문에 죽는다.

▶당대의 주성(酒聖)으로 통하던 조지훈 시인은 술꾼들을 급(級)으로 나누었다. 최고단계인 9단은 술병(―病)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된 폐주(廢酒)다. 그는 주량으로 따지면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던 후배 김관식 시인에게 겨우 3단을 부여했다.

고약한 술버릇이 주도에 어긋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은 저물녘이면 단골 술집에 들러 ‘밥’ 대신 ‘술’을 마셨다. 그가 왁자지껄했던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던 날, 노을은 술처럼 붉었다. 그에겐 술이 밥이었고, 술이 시(詩)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소풍’은 취할 만큼 재미있는가.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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