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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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미국의 부두, 목장, 광산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폭탄주를 즐겼다. 고된 노역의 피로를 잊으려고 ‘양폭(양주+맥주)’을 한 것이다. 추운 날씨에 몸을 덥히는 수단이어서 '보일러 메이커(Boiler-Maker)'라고도 불렀다. 러시아 벌목공들 또한 시베리아 혹한을 견디기 위해 ‘보폭(보드카+맥주)’을 마셨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독주’는 선대가 남긴 신성불가침의 전리품이었다. 중간 중간 술을 마셔야 고통의 비등점이 산화되고, 설렁설렁 노닥거리느니 빨리 취하는 게 숙면의 빙점임을 알았던 것이다.

▶‘술 취한’ 미국은 급기야 금주령을 내렸다. 그러나 간판 없이 몰래 운영되는 '스피키지(speakeasy)' 술집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벨을 울리고 기다리면 문틈으로 확인한 뒤 들여보내는 식이었다. 더구나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교회에 다닐 정도로 되레 폭음을 즐겼다. 같은 시기에 러시아(옛 소련시절)도 강력한 금주조치를 시행했으나 실패했다. 보드카 값을 올리고 강제로 생산량을 줄였지만 술꾼들은 밀주를 마구 마셔댔다. 술은 강제적으로 끊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끊기 힘든 대상일 뿐이다. ‘술’에 관한 한 세상에는 두 부류의 종족이 있다. 술을 ‘마시는’ 자와 술을 ‘즐기는’ 자다. 술을 마시는 자는 세상의 부당함을 뒷담화로 오롯이 토해가면서 ‘그냥’ 영혼 없이 마신다. 흔히들 ‘사람이 좋아서’라는 하얀 거짓말 같은 단서를 달고 말이다. 하지만 술을 즐기는 자는 술청에서, 선술집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토해놓으면서도 ‘마냥’ 마신다. 그래서 술잔이 정직하다. 그 질감의 차이는 투박함의 차이가 아니라, 질박함의 차이다.

▶술 취한 상태는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입이 풀어지는 해구(解口), 곰보가 보조개로 보이는 해색(解色), 원한을 푸는 해원(解怨), 인사불성 상태인 해망(解忘)이 그것이다. 해색 단계를 지나면 술고래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주폭(酒暴)'이 된다. 이때부터는 '1차'로 끝내지 못하고 2차, 3차를 하며 '술집 순례(Bar Hopping)'로 이어진다. '술 끝'이 좋지 않으면 뒤끝이 좋지 않다. 마치 러브(사랑)가 없는 러브샷처럼…. ‘술 권하는 사회’는 서민들의 역린(逆鱗)이기도 하다. 속을 뒤집어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세상이니 '술 푸게' 만드는 것이다. 일종의 홧술이다.

▶폭탄주처럼 섞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랑을 잇는 일이다. 빨주노초파남보가 섞이면 흰색이 되듯 우린 어울림을 좋아하고 섞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술은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고, 간(肝)은 육체의 고단함을 해독하는 장기다. 적당히 흔들자~. 마음을 달래는 폭탄주는 몸에는 시한폭탄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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