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따라 바람따라]
22. 하조도 (下鳥島)
전남 진도군 조도면 10.55㎢ 작은섬
돈대산·신금산 산세와 전망 아름다워
등산길 코스 명물 손가락 바위 이색적
100년 엳사 등대 배들의 길잡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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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대산 전망

하조도 가는 배편, 상조도와 하조도가 한꺼번에 조도로 불린다는 것, 조도군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등은 지난 번에 설명했으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야 되겠다.

상조도를 돌아 본 나는 조도대교를 건너 하조도로 넘어왔다. 목적지인 조도면 창유리는 면적 10.55㎢인 하조도의 중심일 뿐 만 아니라 상조도와 부속섬들을 포함하는 조도면 전체의 중심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면사무소는 물론 파출소와 숙박업소, 식당 등이 창유리에 몰려 있다. 조선시대 수군 기지도 바로 창유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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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림정

조도가 아무리 인기 만점의 여행지라 해도 누가 겨울철에 그리 몰려가랴 싶어 숙박업소 예약도 없이 여관 문을 두드렸는데 예상대로 숙박업소는 한산했다. 하루 숙박비 3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산수장 여관 전체 손님이 나 혼자였으니 더 길게 이야기할 게 없으리라.

여행객이 없어 조용하게 잘 자고 있어났는데 아침에 예상치 못한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아침식사를 하려고 몇 군데 식당을 들렀지만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식당 문에 적힌 전화번호를 이용해 통화를 해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수소문해 겨우 문을 연 집을 찾았는데 식사준비가 안 돼 밥을 해 줄 수 없다는 거였다. 제기랄. 난감했다. 할 수 없이 라면이라도 끓여 달라고 사정을 해서 겨우 허기를 면했다. 그동안 섬을 꽤 여러 곳 다녀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세상의 극치'라고 표현된 상조도 도리산 전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하조도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더 많아서이리라. 나야 손꼽을만한 특별한 것이 없는 상조도가 더 편안하게 걷고 즐기기에 좋았지만 모든 사람의 취향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니 상조도가 인기 없는 걸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 겨울처럼 관광객이 적으니 불편한 일이 생긴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라면으로 아침 허기를 해결하고 돈대산(231m) 산행에 나섰다. 섬의 최고봉은 섬 동쪽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신금산(234m)인데, 서쪽에 있는 이 산을 오르고자 한 것은 두 산을 한꺼번에 오르기 어려운 시간 때문이었다. 신금산까지 종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집엘 돌아갈 시간을 염두에 둬야 했다. 섬을 나가는 여객선을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집까지 5시간 반을 잡아야 하는 귀가길이었다. 그리고 승용차를 등산 시작점인 산행마을에 둬야 하니 원점 회귀 산행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도 감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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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조도 등대

두 산 중에 하나를 오르려면 산세와 전망이 좋은 돈대산 선택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는 등산객들은 두 산의 능선을 즐겨 밟는데 결코 후회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되겠다. 그만큼 전망과 산세가 아름답다.

돈대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산행마을-> 큰방석바위-> 손가락바위-> 돈대산 정상(2.5㎞) 코스를 이용했다.

이 코스에서 만나는 손가락바위는 조도가 자랑하는 명물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평범한 바위지만 멀리서 보면 손가락을 나란히 붙인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동굴에서 넓은 세상을 한번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작은 세상에 있어 본 사람이 넓은 세상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지나친 단견일까?

손가락바위부터 돈대산 정상까지는 바위로 된 등산길이라 거칠 것 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상조도 도리산에서의 전망이 '세상의 극치'라고 표현한 사람이 이 돈대산을 밟지 않은 게 틀림없다. 만일 밟아봤다면 '전망의 백미'쯤으로 표현했을 테니까. 그만큼 이 산의 조망은 멋지다. 푸른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정말 새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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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 바위

돈대산에 서면 섬의 지형을 아주 잘 볼 수 있다. 섬의 중앙은 북쪽이 터진 분지형태로 되어있는데 섬에서는 드물게 농경지가 잘 가꾸어져 있다. 겨울임에도 싱싱하게 초록빛을 띠고 있는 작물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잠시 앉아 겨울답지 않은 날씨로 인해 이마에 솟은 땀방울을 식히며 마을을 바라보니 이 섬에서 땅과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살았을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그래. 사람은 자연을 거슬러 살 수 없다. 자연을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이건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자신을 거스르는 일이라서 더욱 그렇다. 사람이 자연과 하나가 아니라고? 별개의 존재라고? 우리 몸의 세포 유체(流體)와 혈장 전해질의 균형은 달의 위상과 함께 변한다면 믿을까? 또한 이 균형은 바다의 조수와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까?(디팩 초프라 지음 ‘마음의 기적’ 232쪽 참조)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깊게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한 사례다.

산행을 마치고 면소재지에 왔더니 아침과는 달리 이행식당이라는 식당이 문을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 평범한 백반상을 받았는데 솔향이 나는 동치미맛이 미각을 자극했다.

특이한 맛이었다. 주인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건 자기 집에서만 만드는 비법이라며 넌즈시 알려줬다. 동치미를 담근 뒤 솔가지를 그 위에 얹어 놓으면 그리 맛지고 그윽한 솔향이 배어나는 것이라고. 언젠가 우리 집에서도 솔향 배어나는 동치미를 맛보리라.

밥을 먹으며 식당 주인에게 이 섬의 특산물이 뭐냐고 물으니 돌톳·돌미역·멸치 등인데 전국에서 알아준다고 자랑에 여념이 없다.

하조도에 왔으면 꼭 가 봐야 할 곳이 하조도 등대다. 섬 동쪽 끝에 자리잡은 이 등대는 유인 등대다. 모든 등대가 그렇지만 특히 이 등대는 조도군도 특성상 많은 섬들을 피해 운항해야 하는 배들에게 요긴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1909년에 세워져 백 살도 넘은 등대가 아직도 사랑받는 이유다.

?높이 48m 벼랑 위에 아름다운 조형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등대는 신금산을 오르는 여러 등산길 시발점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등산길에 접어들며 만나는 구름다리와 자그마한 언덕에 요염하게 자태를 뽐내는 운림정은 특별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운림정에 서면 등대를 감싸고 있는 만 가지 형상을 한 만물상바위와 더불어 빼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럼 왜 이 곳이 그리 여행객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인지 알게 된다. 지역 주민들은 이 등대섬이 방송과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라고 자긍심이 대단하다.

하조도에서 또 한 곳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한다면 신전 해수욕장을 들 수 있다. 이 해수욕장은 주변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나고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환경오염이 없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사장 모래가 곱고 경사도 완만하여 가족단위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또한 이 부근에는 다양한 어종의 바다 낚시터로도 유명해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높다.

집에 오기 위해 창유항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신금산을 돌아다 보았다. 그래 언젠가 다시 와서 돈대산부터 죽 이어지는 능선에 내 마음을 얹어두리라.

글=민병완·사진=나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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