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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노을… 노젓는 뱃사공 시름을 태우다

[섬따라 바람따라]
21. 상조도 (上鳥島)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4년 01월 24일 금요일 제11면     승인시간 : 2014년 01월 23일 20시 43분
   
 
  ▲ 조도 대교의 일몰  
 

흐르는 세월에는 마디가 없다. 밤과 낮, 계절을 만드는 나선형의 끝없는 이어짐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기 금을 긋고 매듭을 지어 하루니, 연(年)이니 이름을 붙여 놓고 그에 따른 생활주기를 만든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반성과 각오를 갖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나 또한 범인(凡人)인지라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을 다잡게 된다. 하지만 나의 새해는 양력 1월 1일도 아니요, 음력 정월 초하루도 아니다. 바로 동지(冬至)가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분기점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거기서부터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나의 올해 새해맞이를 섬에서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날씨가 속을 썩였다. 할 수 없이 동지가 지난해 12월 24일 집을 나섰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의 상조도를 향해서.

   
▲ 노젓는 할머니
이 섬을 가는 방법으로는 진도 팽목항(진도항으로도 불림)에서 배를 타고 하조도 창유항에서 내려 조도대교를 거쳐 들어가는 게 으뜸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길은 참 멀다.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팽목항까지 네 시간 반이나 걸렸다. 다행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10시30분 배를 탈 수 있었다.

편도운임 4200원. 1만 9000원을 더 내고 차까지 실었다. 섬의 크기가 10.37㎢인데다 인근에 상조도보다 더 큰 하조도도 돌아볼 걸 감안해서였다. 여객선은 40분 만에 하조도 창유항에 도착했다.

   
▲ 도라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상조도와 하조도는 조도군도(鳥島群島)의 중심역할을 하는 섬이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섬들이 마치 새떼가 내려앉은 모습처럼 보인다 해 조도라고 불리는데 조도군도가 154개의 섬(유인도 35개·무인도 119개)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조도군도의 모습이 상상되리라.

아니 상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보아야 한다. 섬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상조도에서 가장 높은 도리산(210m) 정상이다. 도리산에 서면 왜 이 지역이 조도군도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이야기가 너무 앞서갔다. 도리산 밑에 차를 세웠다. 정상에 세워진 통신기지국 탓에 산꼭대기까지 시멘트 포장길이 잘 나 있지만 걸어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 민병완 객원기자
꼬불거리는 오르막길이 길어 봐야 1㎞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데다 어느 섬이든 전망이 트인 길을 걸으면서 푸른 바다와 모여 있는 섬들을 보는 기분이 비할 데 없이 좋았으니 말이다. 여기서도 오르막길의 조망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뭐니뭐니 해도 이 섬의 백미는 도리산 정상의 전망대다. 얼마나 좋은 가는 거기서 보는 풍광이 '세상의 극치'라고 표현한 외국사람이 있었다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해야 되겠다.

그게 누구냐고? 영국 해군장교 바실 홀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1816년 영국이 파견한 동남아 사절단을 수행했었는데 함장 맥스웰과 함께 조선의 서해안과 류큐 탐험을 나서기도 했다. 바실 홀은 탐험을 마치고 ‘조선 서해안과 류큐제도 발견 항해기’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도리산 정상에서 바라 본 소감을 그렇게 멋진 두 마디로 완벽하게 표현했다.(여행작가 문일식 블로그 참조)

도리산 정상 부근에는 200여m의 거리를 두고 아선대 전망대와 도리산 전망대가 각각 자리잡고 있다. 아선대 전망대가 훨씬 조망이 좋지만 그렇다고 도리산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 쑥을 손질하는 할아버지
그 나름대로 멋이 있으니 말이다. 도리산에서 내려온 나는 인근의 여미리 마을을 찾았다. 상조도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자그마한 항구를 안고 있는 이 마을은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더불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건 나그네만 느끼는 감상이다.

지붕의 스레트가 깨지고 벽이 무너진 집이 몇 채 보이는 걸 보면 힘든 고기잡이 생활을 이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분명하니 말이다.

안쓰러운 마음을 여미며 바다에 취하고 섬에 반해 작은 방파제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주름이 촘촘하고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진 할머니께서 힘겹게 배에 오르시더니 넓디넓은 바다를 향해 노를 젓기 시작하셨다.

잔잔한 바다에 노는 연신 긴 물살을 만들고 배는 점점 멀어졌다. 찬 겨울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노를 젓는 할머니의 등 위에 겨울햇살이 내려 쪼였지만 마음까지 햇살이 들려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상조도에는 폐교를 민박집으로 개조한 곳이 있는데 그 부근에 차를 두고 간단히 배낭을 메고 나섰다. 도리산과 여미리 마을을 소개한 선답자들이 더 이상 특별히 어디를 가보라고 지정하지 않은 건 섬에서 섬을 걸어 섬이 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상조도는 아직 섬을 일주할만한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만큼 이 섬이 소박하고 외지인의 발길이 심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바로 그 점이 이 섬의 장점이다. 혼자 또는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호젓한 섬을 걸으며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어디를 걷느냐고? 어디라고 정할 이유가 무언가? 시간을 내려놓고 발이 가는 대로 방파제도 걷고, 해변길도 걷고, 골목길도 걸으며 편함과 여유와 자유를 만끽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걷는데, 한 겨울에 파릇파릇 키운 쑥을 손질하는 노부부가 발길을 잡았다.

잠시 할아버지 옆에 앉아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본다. 섬의 특산물인 쑥밭에는 덮개들이 씌워져 있었는데 추위를 막아 쑥이 잘 자라도록 돕기 위한 것이란다. 저렇게 자란 쑥은 도시로 나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밥상에 올려지리라. 할아버지의 탁한 음성이 귀를 당겼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돈을 벌기는 어렵고 그저 간신히 먹고 사는 것이란다. 그럼에도 왜 자식들을 따라가지 않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한집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오롯한 정을 나누며 살고 싶은 마음이 저분인들 없으랴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어찌 말로 다하랴! 자리에 일어서는 내게 할아버지는 한 마디 툭 던졌다.

"난 곳에서 죽는 게 복인기라."

고향에서 죽는다? 맞다. 고향산천은 꿈을 키우고 삶을 가꾼 터전이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고향땅은 부모를 통해 생명을 잇게 한 은총의 원천이다.

어찌 할아버지뿐이겠는가?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흙에, 땅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그동안 돈벌이 수단으로 땅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지만 그건 할아버지 보기가 민망해 만든 변명이리라.

상조도는 하조도와 더불어 한꺼번에 조도라고 불리는데 이 조도는 2006년에 '한국의 아름다운 섬 100선'에 뽑혔고, 2007년에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조도대교를 포함한 길이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기도 했다. 조도로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훈장 두 개를 단 셈이다.

상조도에서는 다양한 어종을 양식하는 가두리 어업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식당이 없어 회 맛을 보기란 쉽지 않다.

아쉬움을 안고 숙소로 정한 하조도 민박집을 가기 위해 조도대교를 넘는데 쑥을 다듬던 할아버지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그 소박한 마음이 땅을 살찌우고 바다를 지키는 첩경이리라. 그래서일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이 녹아든 섬과 바다를 몸으로 느낀 것만으로도 내가 한 자는 커진 기분이었다.

글=민병완·사진=나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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