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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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의사 약사 변호사 판·검사 회계사 세무사)'자(字) 들어간 직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상대 1순위였다. 여성들이 '사'자 신랑감을 얻으려면 세 개의 열쇠(집·자동차·건물)가 있어야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갔다.

'사(士)'가 '사(死)'로 변하고 있다는 거다. 매월 수천만원을 벌며 '돈방석'에 앉았던 이들이 요즘엔 벌이가 힘들어 '가시방석'이라고 한다. 배우자감 우선순위에서도 공무원과 교사에게 밀려 뒷방으로 나앉았다.

▶한해 1000명씩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업계는 로스쿨 졸업생까지 뛰어들어 그야말로 ‘혈의 누’다. 한의사는 900명, 회계사는 1000명, 세무사는 700명이 매년 배출되고 있다.

희소가치가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아무개 율사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1999년 의약파동에서 승리한 의사들 살림살이도 팍팍하다. 한해 100곳이 문을 닫고 있다.

'칼'만 대면 '돈'을 벌던 의사들의 팔자가 왜 이렇게 됐을까. 주판알을 튕겨보면 이해는 간다. 인건비 42%, 재료비 32%, 관리비 24%를 빼고 나면 의사 몫은 쥐꼬리다.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연봉의 7.5배를 벌어야한다. '오는 손님 받고 가는 손님 안 잡던' 시절이 아니다. 이제 의사도 영업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다.

▶(하지만) 여전히 병원 문턱은 높다. 서민들은 아파도 일단 '버텨보고' 병원엘 간다. 심지어 시골사람들이 아파서 서울 쪽 병원에 가는 건 장례식장 가는 거와 같다는 말이 있다.

충치 하나 빼려고 치과에 가도 '이(齒)'보다는 '돈' 때문에 더 아프다. 일단 입을 벌리고 누우면 돈이다. 그들은 입속을 관찰하며 현금결제의 틈새를 노린다.

아말감(amalgam)보다는 금니(金齒)를 권유한다. 웃을 때마다 목젖이 빛나는 금니를 누군들 싫어할까. 서민들에게 치아란 그저 배고픈 허기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도구일 뿐이다.

어쩌면 의사들이 '데모'를 하는 건 배부른 소리다. 서민들은 죽지 못해 살고, 살기위해 참고 있다. 누가 더 아픈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법전에는 의사의 처우와 처벌규정이 함께 명기돼 있다. 수술에 성공하면 보수를 받지만 환자가 죽거나 불구자가 되면 시술자의 손을 자르도록 규정했다.

또한 성직자가 의사역할까지 했는데 피를 봐서는 안 된다는 율법때문에 외과수술은 이발사가 도맡았다. 지금도 이발소를 나타내는 홍청백의 표식은 본래 홍(紅)은 동맥, 청(靑)은 정맥, 백(白)은 붕대를 상징했던 유럽 상처의학의 유산이다.

‘동의보감’ 허준 선생이 지금까지도 추앙 받는 것은 ‘사람’을 ‘돈’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의술은 기술이 아니라 인술(仁術)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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