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블뉴스]

나는 요즘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다. 그동안 몰았던 내 오래된 SUV 애마가 올해를 넘기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내 애마는 자동차종합검사에서 간신히 매연 기준을 통과했다. 그것도 차를 조금 손 보고 몇 번 기준을 넘기는 수모를 겪은 끝에 겨우 기준을 턱걸이했다. 내 2000년식 애마는 매연저감장치를 달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는 강화된 기준을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수도권에서 시행 중인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제도를 통한 보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고차로 파는 것보다 수중에 쥐는 돈은 적겠지만, 사후처리는 훨씬 깔끔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말 예기치 못한 IMF 사태로 집안이 박살나는 꼴을 본 나는 대출 따윈 쳐다보지도 않는다.

폼은 나지 않아도 부채 없이 안정적인 재정을 꾸리며 살아가겠다는 것이 내 인생 경제 목표니 말이다. 알아본 일은 없지만 아마도 내 신용등급은 꽤 높은 편일 거다. 물려 받을 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문제지. 당연히 매달 대출을 갚아나가야 하는 신차구입은 내 관심 밖의 일이다.

예산은 1000만원 미만으로 잡았다. 처음에는 그나마 조금 신형인 SUV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서울은 내 고향과는 달리 SUV로 오가는 일은 꽤 불편했다.

당장 주차부터 말이다. 그래서 승용차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난 여름 제주도에서 한 승용차를 렌트해 몰았던 경험이 있던 박스형 승용차가 첫 후보로 올랐고, 조금 더 검색하면서 실용성이 높아보이는 중소형 승용차, 그리고 딱정벌레를 닮은 외제차가 후보군에 추가됐다.

가장 눈이 많이 가던 딱정벌레의 디자인에 혹해 이리저리 검색을 하던 나는 문득 중고차 구입이 인연을 만나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확실하게 느끼는 사실은 세상에는 결코 낭만이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 능력과 처지의 바깥에 존재하는 상대방과 만나 영화 같은 사랑을 나누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외모와 성격, 능력을 고루 갖춘 완벽한 상대방이 내 앞에 소개팅으로 나타나는 일은 극히 드물며. 설사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나와 인연이 맺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런 표현이 적합하진 않아 보이지만, 사랑을 처음 해 본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중고차와 비슷한 신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중고차여도 마음에 쏙 드는 비싼 물건은 대출 없이 예산 이상의 물건을 구입할 수 없으며, 대출조건 역시 까다롭다. 또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구입을 하면 자칫 카푸어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디자인만 쫓다보면 연비와 승차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연비를 우선으로 고르다보면 디자인을 포기해야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런 상황을 소개팅과 선 등 이성과의 만남에 대입하자 기가 막히게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여기서부터 선택지는 한정된다. 외모가 괜찮은데 성격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외모와 성격은 좋은데 능력이 부족한 사람, 외모와 능력은 좋은데 성격은 더러운 사람, 능력은 좋은데 외모와 성격이 별로인 사람, 능력과 성격은 좋은데 외모가 빠지는 사람 등이 경우의 수로 꼽힐 것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미천한 경험에 비춰보면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성격이었다. 그리고 성격이 좋으면 처음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외모도 점점 예쁘게 보이더라.

그렇게 생각을 하니 눈이 조금 맑아졌고, 자연스럽게 외제차는 후보에서 사라졌다. 또한 중소형 승용차 역시 실용성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과거 경차 시절 도로에서 겪은 수모들이 떠올라 후보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그렇게 내 중고차 최종후보는 첫 후보 그대로 잠정 정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기는 사실은 첫 후보차량을 알아보는 동안에도 외제차가 머릿속에서 종종 떠오른다는 것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속담이 떠올랐다. 나는 '그 다홍치마가 쉽게 물이 빠지고, 수선비도 많이 드는 귀찮은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속담을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개똥철학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나는 중고차와 비교해보면 어떤 차종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쪼까 실용적이고 연비도 그럭저럭 쓸만한데 승차감은 별로고 모양도 투박한 SUV와 가장 닮은 것 같았다. 딱 지금의 내 차네? 이런!

꺼부기 http://blog.daum.net/crazytur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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