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따라 바람따라
소매물도 (小每勿島)

▲ 등대섬

경남 통영시가 자랑하는 통영8경 중 하나이면서 남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소매물도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 섬을 문화재청이 명승 18호로 지정하고, 2007년에는 문화관광부가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멋진 풍광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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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매물도 해안 절경

하지만 소매물도가 지금의 지명도를 얻는 데는 자연의 힘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자본의 힘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알음알음으로 몇몇 사람에게 전해진 이 섬이 대중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끌게 된 게 소매물도 귀퉁이에 있는 등대섬이 쿠쿠다스라는 과자의 광고 배경으로 등장하면서였으니까 말이다. 섬에 들어서면 '쿠쿠다스 섬'이라는 팻말도 쉽게 만나게 되는 연유다.

면적 0.51㎢의 작은 섬에 들어가는 배가 거제시 저구항에서만 네 번이 있다. 통영시 통영항에서 들어가는 배를 더하면 두 배는 된다고 봐야 한다.

이 섬이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다. 3년 전에 찾았던 이 섬을 다시 찾은 건 장난감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소매물도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어 더 좋은 이 섬에 서서 섬들이 바람과 파도와 햇살과 더불어 나누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소매물도로 가는 여객선은 이미 말한 대로 두 곳에서 탈 수 있다. 저구항에서는 50분 정도 걸리는데 통영항에서는 그 두 배를 잡아야 한다. 저구항에서 11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기 위해 꼭두새벽에 집을 나섰다. 지난 4일이었다. 저구항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주차비를 받지 않는다.

기분이 좋았다. 역시 나 같은 속물에게는 공짜가 매력이 있는 셈이다. 설렘과 기대 속에 소매물도 선착장에 발을 디디니 등산로 겸 마을길을 따라 주민들의 거주지와 펜션단지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마을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갈 길을 가늠하기 위해 잠시 서성이자 여행객을 상대로 즉석 회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옷깃을 당긴다.

섬이 크지 않으니 둘러볼 길은 단조롭다. 항구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따라 오르면 폐교가 된 소매물도 분교가 나온다. 1996년 폐교된 이곳에서는 졸업생 131명을 배출했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한 때는 민박집으로 운영되었던 이 건물은 지금은 비어 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가파른 오름길을 밟느라 거칠어진 숨결을 바다를 보며 가다듬지만 발을 멈춘 건 춤이 차서만은 아니다.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폐교를 만나는 게 한두 곳이 아니다. 어찌 섬뿐이랴. 농어촌 곳곳에 폐교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어릴 때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꿈을 키우던 터전이요, 이웃 마을 사람들이 교류하는 우정의 매개장소였다.

▲ 소매물도 해안 절경

특히 운동회라도 있는 날이면 초등학교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웃고 달리는 축제장이 되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학교도 텅텅 비어가고 있다. 이건 농어촌에 미래가 없다는 뜻과 맥이 닿아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1차 산업의 터전이 황폐해지면 2차, 3차 산업이 과연 건실하게 자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답답함을 한숨으로 뱉어내고 발길을 돌리면 섬에서 가장 높은 157m 망태봉에 자리잡은 '관세 역사관'이라는 아담한 건물을 만나게 된다. 원래 이 역사관은 1978년부터 10년 동안 부근을 오가는 밀수선을 감시하던 초소였었다. 3년 전에는 을씨년스런 빈 건물이었는데 이제는 새 단장을 하고 여행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관세 역사관을 지나면 유명한 등대섬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이 등대섬은 너무 알려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사진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도 이름이 나있다.

등대길까지 가는 도중 해안 곳곳에서 발달한 해식애(海蝕崖)를 보는 건 또 다른 기쁨이다. 해변의 바위경관이 뛰어나다. 공룡바위, 고래바위 등등 갖가지 이름이 붙은 바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바위들은 등대섬과 어울려 그 진가가 더욱 높아진다. 마치 동화 속 세상을 걷듯 행복하게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등대섬에 닿는다.

▲ 관세 역사관

소매물도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등대섬을 밟아보고 싶어 하지만 아무에게나 열리는 길이 아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연결하는 70m의 열목개 자갈길이 하루 두 차례만 길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열리는 시간도 물때에 따라 다르다.

사전에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푸른 바다가 감싸는 등대섬에 서서 찰싹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주변의 갖가지 바위들을 살피다 보니 별천지에 온 느낌이 들었다. 부러울 게 없다. 우리 강산, 우리 산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굳이 다른 나라 관광지를 찾아다닐 이유가 없음도 깨닫게 된다.

옛날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 신하인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가던 중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라는 글(徐市過此)을 새겨놓았다는 글씽이굴도 바로 이 등대섬에 있다.

아기자기한 풍광을 살피고 다시 발길을 돌려 분교 앞까지 되돌아오면 북쪽 해안을 따라 마을까지 이어진 산책길을 걸을 수 있는데 거리는 1.5㎞ 정도다.

이 소매물도의 산책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미륵도, 한산도, 비진도, 연대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등 6개 섬을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한려해상 바다 백 리 길'의 한 구간인데 소매물도 북쪽 해안길은 나무들 사이로 나 있어 좋은 전망을 누리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이왕 왔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으니 빼놓을 수가 없다.

이 산책길을 걷다보면 남매바위라는 두 개의 바위를 만났다. 서로 30m정도 떨어져 있는데 전설이 애잔하다. 남매로 태어난 두 사람이 가정 사정으로 어릴 때 헤어졌다. 이들이 어른으로 자라 두 사람은 서로 남매인 걸 모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천륜을 거스르게 된 이들은 첫날밤에 바위로 변해 서로 마주보며 함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전설을 만든 게 누구이던 잠시 바위 밑에 앉아 세상사의 숱한 인연을 돌아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 아닐까?

지금 소개한 길을 밟아보면 소매물도에 난 모든 길을 다 밟는 셈이다. 소매물도 들어가는 배를 타면 낚시가방을 든 사람들을 적잖이 만난다. 이 섬 부근 바다가 고등어·전갱이 등 회유 어족이 많아 낚시꾼들에게는 각광을 받고 있어서다. 겨울임에도 곳곳에서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고 낚시삼매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만난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소매물도는 충청도에서는 먼 곳에 자리잡고 있지만 들어가고 나오는 배가 잦은데다 산책로 또한 단조롭고 짧아 일찍 나서면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 겨울에 잠시 동화 속 세상을 찾아가 찌든 심신을 달래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가족들이 함께 가면 더 멋진 추억이 되리라.

글=민병완·사진=나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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