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 ?
?
▶1등에게는 돈가스를 사준다. 그런데 2등을 하면 아무 것도 없다. 빈말이라도 칭찬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2등일 뿐이다. 1등을 하면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2등을 하면 ‘민간인’이다. 마라톤에서 1등을 하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그런데 2등을 하면 조용히 사이드로 가서 생수나 마신다. 한마디로 '물'먹는 존재가 돼버린다. 올림픽 100m경기에서 1등과 2등은 불과 0.01초의 차이다. 로또 1등은 수십억을 받지만 2등은 몇 천만원을 받는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더럽지만, 더러워도 1등을 하고 싶은 게 사람이다. '따까리' 신세가 너무 처량하기 때문이다. 1등은 한자리다. 무슨 수를 써도 1등은 둘이 될 수 없다.

▶부통령(2인자)의 '부(副)'를 파자(破字)해보면 흥미만점이다. 입(口)과 재물(田)이 1인자(一) 밑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형태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고, 그 입을 잘못 놀리면 칼(刀)이 날아온다. '부(副)'를 떼어 내면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통령'이 된다.

신하(2인자)가 권력자(1인자)에게 간(諫)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넌지시 돌려 말하는 휼간(譎諫), 고지식하게 대놓고 말하는 장간(戇諫), 자신을 낮춰 납작 엎드려 말하는 강간(降諫), 앞뒤 가리지 않고 곧장 찔러 말하는 직간(直諫), 비꼬아 말하는 풍간(諷諫)이 그것이다. 당신은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쪽인가. 1인자가 될 말본새를 가졌는가.

▶한국에서 2인자하면 누구나 JP(김종필 전 총리)를 떠올린다. 민주공화당 창당, 3당 합당, DJP연합 등 한국정치사 고비마다 현장에 있었다. 사실상 그가 PP(박정희)·YS(김영삼)·DJ(김대중)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9선으로 정치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었지만 결국은 2인자로 끝났다.

17대 총선 때 '지는 해'라는 비판을 받자 "지기 전에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고 했지만 끝내 '지는 해'였다. 그의 아호는 구름위의 정원, 운정(雲庭)이다. 운치는 있으나 바람이 거세면 풍운(먹구름)이 된다.

▶JP는 박정희시대에 '자의반(自意半) 타의반'이라는 말을 남기고 여러 번 2인자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는 1인자의 심기를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바람 따라 눕는 민초(民草) 같았다. 대원군을 꿈꾸다가 처형된 '2인자' 장성택은 한때 김정일로부터 "네가 뭔데 내 흉내를 내면서 세도를 부리느냐"며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장성택은 그곳에서 2년 동안 쇳물을 나르며 평범한 인민처럼 살았다. 2인자는 그림자다. 나무 위에 걸쳐진 태양을 쐬려면 침묵과 절제의 미학이 있어야한다. 태양은 그림자를 밟는다. 그림자는 날고 기어봤자 그늘이 될 뿐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