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김황식 전 총리가 엊그제 새누리당 의원 초청 강연회에서 우리 정치구도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국회 해산제도가 있었으면 국회를 해산시키고 다시 국민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백번 들어도 맞는 말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정치 풍토에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가 없다.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저서에서 "적과 동지의 구별이 사라지면 정치생활의 의미도 없어진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현실 정치의 내면에서 본 이론이다. 하지만 이게 다원주의를 부정하고 나치 옹호론으로 이어졌다는 건 경계할 일이다. 정치 불신-정치적 무관심이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극단적 적대관계에 길들여진 우리 정치에 주는 메시지가 그래서 더욱 매섭다.

여야 간 대화채널이 꽉 막혀 있으니 무얼 기대할 수 있나. 감사원장 임명안을 여당 단독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민주당은 표결 무효를 주장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법인카드 개인용도 사용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 인물을 굳이 장관으로 임명하려는 여권의 독선도 문제이지만 이를 감사원장 임명안과 연계한 야당 또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9개월이 넘도록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숨이 막힌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 전략'으로는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모두 공멸할 따름이다. 멍드는 건 오직 국민뿐이다.

폭등하는 전셋값, 취업난, 가계부채로 시달리는 서민의 아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대기업은 수치상 호황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내년 예산안을 법정 기일 안에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터인데 종무소식이다. 민생문제 해결 법안 또한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국민 볼모로 게임을 벌이는 정치권 배짱이 놀랍다.

"때로는 독재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나돈다. 어이가 없다. 이래저래 뒤죽박죽이다. 그 선봉에 정치권이 서 있다. 종북 논쟁으로 영일이 없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고인이 돼버린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까지도 끄집어냈다.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이 커지고 있다. 그러니 국정원 개혁특위 구성,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특검 도입 주장이 야당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대내외적 상황이 100년 전 구한말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분석은 결코 남 얘기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 양상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각축 구도가 심상치 않다. 북한마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내부적으로 계층·지역·세대 갈등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자각이 싹틀 때도 됐다. 왜 우리 사회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여기서 양보와 타협 그리고 배려라는 상생의 덕목을 깨칠 수가 있다. 여야가 책임을 공유해야 마땅하다. 최종 국정책임자인 대통령의 몫이 가장 크다. 모쪼록 후덕(厚德)한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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