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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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으며 살았다. 직립보행만으로는 사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도’가 필요했고 점차 뛰기 시작했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의 휘디피데스라는 병사가 페르시아전쟁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0㎞를 뛰고 죽은 것이 마라톤의 기원이다.

어쩌면 42.195㎞는 죽음의 거리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뇌를 갉아먹고, 심장박동이 혈관을 부풀려 고통을 으깨는 뜀박질…. 그리하여 난 마라톤을 '인간의 통증'이라 명명한다. 1967년 2시간10분벽이 깨지고 2003년 '마’의 5분벽이 무너진 후 현재까지 세계기록은 2시간3분23초다.

한국기록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7분20초다. 이는 42.195㎞를 100m당 17초에 뛰어야하는 속도다. 보통 사람들에겐 전력질주에 가깝다. 이봉주는 왼발이 4.4㎜나 긴 짝발이었지만 20년 동안 풀코스를 41회나 뛰었다. 지구 네 바퀴를 돌고도 남을 거리다.

▶마라톤에 빠삭한 아프리카 선수들의 다리는 두루미처럼 가늘고 버드나무처럼 길다. ‘큰 됫부리 도요’는 쉬지 않고 가장 멀리 날아가는 새다. 이 새는 1만㎞가 넘는 거리를 2000m 상공에서 평균시속 56㎞로 쉬지 않고 일주일을 날아간다.

몸길이 41㎝ 몸무게 250g. 이들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방과 근육 속의 에너지가 모두 바닥나 뼈와 가죽만 남는다. 42.195㎞를 달리는 마라토너도 한번 완주하고 나면 몸무게가 3~4㎏이 빠진다. 얼굴은 쪼글쪼글해지고 뼈와 가죽만 남는다. 지독한 결핍이다.

▶필 파커라는 사람은 목발을 짚고 런던마라톤을 완주했다. 5만여명의 마라토너들이 5시간 내에 경기장트랙으로 돌아왔지만 파커는 14일이 걸렸다. 하루 3.2㎞씩 5만 2400걸음을 걷는 레이스였다. 마라톤의 첫 고비는 5㎞에 찾아온다. 몸이 천근만근 자꾸만 땅속으로 가라앉아 마른 수건에서 마지막 물을 짜내듯 힘겹다.

자기 능력치를 뛰어넘어 ‘마음이 몸을 이끄는’ 단계다. 하지만 30분 이상 뛰면 '꽃밭을 걷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하는데 일종의 오르가슴이다. 고생 끝에 낙이다.

▶마라톤은 스피드가 아니라 인생의 족적을 남기는 스키드(skid)다. 흘린 땀만큼 거두는 정직한 운동이기에 그렇다. 달리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 그런데 비켜갈 수도 피해갈 수도 없다. 인생도 마라톤과 같아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누군가는 42.195㎞를 뛰어서 가고, 누군가는 걸어서 간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간다고 해도 누구나 목표점은 희망이고 종착점은 죽음이다. 아직 '끝'이 오지 않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 희망을 위해 다소 늦더라도 끝까지 완주하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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