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만 낮았더라면 세계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혀가 1㎝만 작았더라면 천하의 영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가 그녀의 치마폭에 놀아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 키가 10㎝만 더 컸더라면 지금쯤 3부 리그 축구선수쯤은 됐을 것이다.

유년시절 축구는 '밥'이자 '법'이었다. 배고파서 공을 찼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공을 찼다. 공을 차기 위해 밥을 먹었고, 공을 차기 위해 밥을 굶었다. 공을 차기 위해 농사일을 거들었고, 공을 차기 위해 호미자루를 집어던지고 줄행랑쳤다. 하지만 키가 더 이상 크지 않았고, 그날 이후 축구를 접었다. 태생적 한계에 부닥쳤던 것이다.

▶축구는 발로 차는 게 아니라 머리로 차는 것이다. 머리는 안 쓰고 발만 쓰는 축구는 '부시맨 축구'다. 예전의 축구선수는 배가 고파 공을 차기 시작했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공을 찼다. 그래서 헝그리축구가 무서웠다. 하지만 세월은 변했다.

이제 배고프면 이기지 못하고, 배고프면 살아남지 못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박지성은 70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한해 246억을 받는다. K리그 대기업구단인 수원 삼성, 전북 현대, 울산 현대의 1인당 평균연봉은 2억 5000만원대다. 반면 시민구단 대전시티즌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6500만원이다. 박지성 연봉 반년 치면 30명의 선수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구단은 스타가 필요하다. 스타는 상품이고, 구단은 그 상품을 팔아 돈을 번다. 비싸게 사온 스타 골잡이들은 관중을 몰고 다니며 구단을 먹여 살린다.

대기업 구단들이 돈을 퍼부어 스타를 영입하는 것도 '장사'를 잘하려는 것이다. 부자 군단과 헐값의 무명구단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당연히 배부른 축구가 이긴다. 돈을 처들여서 못 이길 경기는 없다. 결국 국내외 스포츠 명문구단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전쟁(戰爭)에서 이긴 게 아니라 전쟁(錢爭)에서 이긴 것이다.

▶축구는 11명이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프런트와 2군 선수, 서포터즈들이 힘을 합쳐 뛰는 경기다. 이제 뻥축구는 통하지 않는다. ‘미드필더(투자+실력)’를 거치지 않고 무작정 공을 멀리 차버리는 ‘뻥축구(무능력한 투자)’는 동네축구에서도 사라졌다. 1~2년차 무명들만 잔뜩 뽑아놓고 승리하라고 외치는 건 저렴한 만용이다. 시민구단 시티즌이 1부 리그 생존(강등) 갈림길에 서있다.

이들은 스타 한명 없이 헝그리축구를 하고 있다. 당연히 승리하는 법을 잊을 수밖에…. 이 또한 가난한 구단의 태생적 한계다. 헝그리축구가 싫으면 앵그리(angry·분노)축구를 해야 한다. 악으로 깡으로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어라. 그까이꺼, 1부 리그서 잠깐 내려온다고 천지가 개벽하겠는가. 처음부터 배부른 ‘스타’는 없었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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