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논설실장

나라마다 갖고 있는 대통령이나 총리 관저는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 그 이상의 정치적인 감각을 대변해 준다. 영국 다우닝가(街), 프랑스의 엘리제궁, 미국의 백악관이 주는 이미지는 국민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끊임없이 창출해 낸다. 반면 러시아의 크렘린은 철옹성처럼 음습한 공작정치로 무장한 권력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난다.

한국의 청와대는 어떤가. 북한산과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고 좌청룡인 낙산, 우백호인 인왕산, 그리고 명당수인 청계천이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이루는 명당이지만 제값을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역정을 그대로 상징하듯 파란만장한 상흔을 드러내 준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답시고 조선 총독부 건물을 때려부순 후 어설프게도 조선 왕조를 흉내내는 위엄과 권위찾기에 나섰기 때문일까. 봉건왕조 시대의 사이비 건축양식으로 지어졌기에 도통 진실성을 찾기 힘들다고 말하면 지나친 논리적 비약일까 생각해 본다.

그 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오만에 취해 취임 초 당시의 시대 정신이나 사명감이 희석되는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건축양식이나 공간 배치를 보면 그 속에 생활하는 사람치고 스스로 벽에 갇히고 마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한결같이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썩 좋지 못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거나 측근들의 부패로 망신당하는 대통령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엊그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구조라고 지적한 것은 많은 걸 생각케 한다. 청와대의 공간적 구조를 보면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별관이 멀리 떨어져 있어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려면 경호실 승인을 거쳐 5분 가량 승용차를 타고 가야 한다. 국가현안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는 데 건물 구조가 장애물로 작용해 왔다면 업무공간을 재배치하는 게 마땅하다.

복잡한 동선(動線)은 인간을 고립시키게 마련이다. 과거 경무대 시절부터 집무실과 비서실이 그토록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국정에 대한 민주적인 해결 방식이 퇴색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알 만하다. 그런 토양에서는 비공식 라인 등 측근들이 인(人)의 장막을 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전횡을 일삼을 소지가 많다. 그간 우리 국정의 혼란상과 무관치 않은 요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청와대 주인의 발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우닝가나 백악관의 운영 체제가 자유분방하면서도 굳건한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처신하고 해법을 찾는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언제든지 장소 불문하고 국민을 상대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TV에 나타난 우리 대통령은 으레 근엄한 표정으로 각종 회의에서 지시하는 장면 일색이다. 대통령의 직무가 청와대에서 고관들에게 임명장이나 주고 리셉션만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제는 청와대는 구중심처(九重深處)에 갇혀서는 안 된다. 노 당선자는 '국민 대통령', '열린 청와대,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청와대를 국민친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국정 개혁을 통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그건 지난 90년 청와대에서 신축공사 중 조선 중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라는 표석이 발견돼 역사적으로도 길지로 입증된 의미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