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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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가수 이문세의 구수한 목소리가 돌담길을 떠돈다. 정동(貞洞)에 있는 덕수궁은 처절했던 500년 왕조의 마지막 편린이다. 1896년 고종이 변복을 하고 영추문을 빠져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곳도, 명성왕후가 시해된 후 정치1번지가 된 곳도, 대한제국이 멸망한 곳도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거닐면 백발백중 헤어지게 된다는 징크스가 있다. 역사도, 사랑도 언젠가는 세월을 따라 떠나간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1981년 한국을 배우자는 '동방정책(Look East)'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다졌다. 2020년까지 선진국으로 도약하자는 '비전 2020정책'은 지금도 먹히고 있다. 그의 탁월한 수완은 다종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정치, 사회적 안정을 이룬 데서도 잘 드러난다. 5번째 총리 연임기록을 세운 그는 임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도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며 용퇴했다. 국민들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며 그를 칭송했다.

▶2006년 1월, 이원종 충북지사(제천 출신)가 지방선거 3개월을 앞두고 물러났다. 그는 임명직 한번, 민선 두 번의 충북도지사를 지냈다. 2013년 8월엔 염홍철 대전시장(논산 출신)이 지방선거 9개월을 앞두고 정치무대에서 용퇴했다. 그도 임명직 한번, 민선 두 번의 시장직을 수행했다. 무릇 범인(凡人)이라면 한번쯤 더 욕심을 부려 볼만도 한데 이를 비운 것이다. 무명씨들은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다. 떠나는 사람에겐 아쉬움과 억울함이 있고, 남아있는 사람에겐 (잘잘못에 상관없이) 결별을 통보받은 연인처럼 뒤끝이 아리다. '마지막'이라는 말처럼 가슴 먹먹한 단어가 어디 있는가. '마지막'은 시작의 반대편에서 정점을 향해 치닫는 완전한 연소다. 그냥 연소가 아니라, 마음 끝까지 불태우는 불꽃이다.

▶오늘도 정치면 편집을 지켜봤고, 제목에도 간여했다. 뭇 정치인들이 토해놓는 무수한 '똥덩이'도 치웠다. 지면 위에 배신과 중상모략, 변절과 반목, 거짓말과 보복, 트집과 피비린내가 낭자했다. '아름답게' 퇴장하고자 하는 사람의 심경에 무슨 간투사나 군말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벌써부터 長(장)이니 官(관)이니 士(사)자 달린 것들을 비롯해 정치 모리배들이 무주공산을 향해 돌격하고 있다. 시정(市政)을 추진할 때 시원하게 한번 도와주지도 않고, 비토만 놓던 자들이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30년간 1000편의 시(詩)를 쓴 미당(未堂)을 떠올릴까? 아니면 진정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도리를 모르는 군상들의 무지를 되새길까.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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