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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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비행기를 탄 원더우먼은 황금 올가미와 팔찌로 총알을 막아내는 세계 최강의 여인이었다. 특히 늘씬한 몸매와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모는 아이들마저 반해버렸고 이모뻘인데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600만불의 사나이’(스티브 오스틴 대령)는 4㎞밖을 볼 수 있는 천리안이자,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총알' 혹은 '번개'였다. 소머즈는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고 10m 담벼락도 우습게 뛰어넘었다.

두 얼굴의 사나이, 데이비드 박사가 헐크로 변신할 때쯤 달뜬 동심의 근육은 활시위처럼 팽팽해졌다. 아이들은 낮이나 밤이나 뚜두두두~ 뛰어다니며 미쳐갔다.

▶TV가 흔치 않던 시절, TV를 가진 주인집 아들이야말로 상전이었다. 그는 유세를 떨듯 채널권을 휘둘렀다. 그가 틀어주지 않으면 TV를 보지 못했고 그가 꺼버리면 시각적 유희는 곧바로 암전이 돼버렸다. 때문에 '그 녀석'에게 골목대장 계급과 주전부리를 바쳤고 항상 같은 편이 되기 위해 머리를 수그렸다.

그만큼 ‘TV 동냥’은 힘들었다. 하지만 TV상태는 조악했다. 채널 손잡이는 떨어져나가 펜치로 돌렸고, 찌지지직~소리가 나면 누군가 밖으로 뛰어나가서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화면조정에 진땀을 뺐다. 이렇듯 우린 TV를 보기 위해 항상 전쟁을 치렀다. 1975년 드라마 '전우'에서 소대장 역을 맡은 나시찬(충남 대덕군 북면·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출신)을 보기 위해서….

▶이제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서 탈이다. 가족이 모이면 인간의 입은 닫히고 TV만 혼자 떠든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TV 앞에서 밥을 먹고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고 책을 본다. TV가 인간을 사육하고, 인간은 TV를 숭배한다. TV는 용감무쌍한 독재자고 인간은 불쌍한 노예다.

무한한 오락에 미쳐 왜 웃는지조차 모르는 지경이니 생각은 돌이 됐다. 어머니는 하루 평균 3시간29분, 아버지는 2시간20분, 초등학생은 2시간3분을 바보상자 앞에 앉아 바보처럼 살고 있다. 우리가 TV를 보는 게 아니라 TV가 우리를 CCTV처럼 꼬나보며 사색과 통찰, 개성, 다양성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채널은 현재 200개가 넘는다. 스포츠, 골프, 낚시, 바둑, 등산 등 포르노를 빼곤 다 있다. 국내에 유입되는 위성방송 채널수도 6909개이고, 이 중 771개는 별도 장비를 통해 공짜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요즘 수신료를 올린다고 법석이다.

벌써 몇 년째다. 현재 KBS 수신료는 공영방송이라는 명목 하에 전기요금에 아예 포함(준조세)시켜 강제징수되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서 몇 년을 살아도, TV를 창고에 처박아두어도, 난청지역에 살고 있어도 수신료를 걷는다. 그런데 납세의 주체인 국민의 여론은 묻지 않는다. 말 한마디 없이 자기들끼리 돈을 올리는 건 '도둑놈'이나 할 짓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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