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신용 편집국 부국장겸 사회부장

요즘 대전시청사는 '거대한 찜통'과 같다.

하루 종일 폭염을 머금고 있는 건물내부는 밖에서 불어오는 한줌의 바람에도 시원함을 느낄 정도다. 시청사는 지역의 다른 관공서보다 더 덥다. 예년에는 실내온도 28도 이상일 때 자율적으로 냉방장치를 가동했지만 올해는 전년도 전력사용량의 20% 절감이 원칙이다. 정부의 제재가 뒤따르기 때문에 의무사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전시는 매년 수범적인 절전을 실천해 왔던터라 올해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중앙공조방식인 시청사는 7월 한 달간 고작 8차례(총 10시간30분) 냉방장치를 가동했을 뿐이다. 이 정도면 최첨단 시스템을 자랑하는 대전시청사의 냉방장치는 한낱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찜통 청사에서 더위를 참아내며 생활하고 있다. 끈적거림과 흐르는 땀, 퀴퀴한 냄새…, 짜증도 날 법하지만 민원인을 대하는 공직자들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더위에 지치고, 업무에 시달린 공직자들은 파김치가 돼 오늘도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민원인들도 시청사를 찾았다가 당황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서부터 후텁지근함이 느껴지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날 때면 숨이 막힐 정도다.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대전의 랜드마크인 시청사만큼은 실내온도를 탄력적으로 조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에 온 국민이 애꿎게 피해를 보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사는 우리가, 세계 경제대국 12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왜 에너지 절약이 아니라 에너지 사용 제한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국제적 망신을 자처해야 하는가.

국민 모두가 안다. 원전비리로 인한 것이 아닌가. 원전부품 시험성적서 위조사건으로 인한 원전의 가동 중단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예년만큼 전력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일한 관리·감독과 전력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크다.

그런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이른바 '더위참기 운동'이라니 기가 막히다.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이 국민에게 고통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요금 누진제 탓에 찜통더위에도 선풍기조차 제대로 틀지 못하고 생활하는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16년 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 떠오른다. 88서울올림픽 이후 고도성장을 해 온 우리나라는 기업들이 무리한 차입을 통해 몸집불리기에 나섰고, 은행들은 갚을 능력을 따져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면서 외환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1997년 11월 21일 우리나라는 이른바 '경제신탁통치'를 받아들이는 대신 구제금융을 얻어 쓰는 굴욕을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이 역시 국가재정을 파탄의 위기로 내몬 정치의 부재 때문이 아니었던가.

국민들은 그때 20세기판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한뜻으로 티끌모아 외환위기 극복에 동참했다. 장롱 속에 고이 모셔놨던 금가락지며, 결혼 패물, 아이들 돌반지 등 금붙이를 모두 꺼내 금 모으기 운동에 적극 나섰다. 금 모으기 운동과 더위참기 운동에는 위기에 빠진 내 나라를 구하겠다는 온 국민의 고난과 희생정신이 투영돼 있다.

국민들은 오늘도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될 곳에서 땀을 흘리며 무더위를 참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몇 달 뒤면 불어 닥칠 맹추위는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잘못된 정치(政治)야말로 국민의 행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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