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새누리당이 역시 한 수 위다. 반면 민주당은 번번이 밀리면서 야당 노릇도 못하게 될 궁지에 내몰렸다. 급기야는 장외(場外) 정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결과를 예단하기엔 이르다. 애초 '국정원 댓글 의혹 국정조사 특위' 가동 이후만 해도 민주당 측에 유리한 판세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상 보니 그게 아니었다. 국정조사를 하기로 야당에 선심 쓰는 척 합의해 주더니 정치적 실속은 다 챙기는 여당이다. 새누리당의 전투력만은 알아줄만하다.

검찰이 지난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이 사안 처리 과정은 향후 정국 운영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게 돼 있었다. 최고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경찰 수뇌부의 축소·은폐 수사 혐의가 검찰수사로 드러났으니 그 파장이 쉬 가라앉을 리가 있나.

사실로 판명될 경우 국기문란·헌정질서 훼손 행태로 역사에 기록될 판이다. 박근혜정권의 정통성에 먹칠을 할 수도 있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집권 여당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국정원 개혁 등 그에 상응한 조치를 적극 모색하는 게 정치 도의상 맞다.

그러나 상황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 엿세 만에 급반전 되고 만다.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의 활약상 덕분이다. 새누리당의원들이 국정원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단독 열람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늘의 한국정치가 굳이 2007년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지 묻는 국민이 의외로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김한길 대표가 '선(先) 국정조사-후(後) 회의록 공개'를 제안한 반면, 문재인 의원은 우선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주장하는 등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던 터였다. 그 틈새와 타이밍을 국정원이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2급 비밀문서로 돼 있던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뒤 전격 공개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NLL의 진실게임 공방'으로 전환되면서 결국 국정원 정치 개입의혹은 반감되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어찌 보면 민주당이 자초한 국면이다.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국가기록원에서 열람하기로 했으나 원본 자체가 아예 실종된 걸로 확인됐으니 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자괴감이 민주당에 넘쳐났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에 책임론이 가중되고 있다. 새누리당 강경파로부터도 집중 포화를 맞는 모양새다.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한 국정조사마저도 불투명해졌다. 휴가철 운운하며 국정조사 자체가 미뤄졌다. 여야 간에 사사건건 시비가 붙었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쪽에 비중을 두고 관련 증인을 내세우려 한다. 이게 관철되지 않으면 핵심 인사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 채택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여당의 전형적인 물타기 방해 공작이 갈수록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러다간 국정조사 의미가 실종될 처지다. 그럴수록 야당의 무능한 대처능력이 더 부각될 따름이다. 보기에도 민망하다. 야당다운 리더십 부족, 전략 부재의 대가를 톡톡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정치를 조망하건대, 어디서도 참다운 정치력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상생과 대화·타협, 설득·양보의 배려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죽기 아니면 살기 식' 꼼수만이 설친다. 그러고도 국민을 위한 정치세력이라고 할 수 있나.

정당정치를 불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야 모두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여론조사 결과 무당파(無黨派)가 40%대를 맴돌고 있다. 예삿일이 아니다. 10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오늘의 현실을 엄중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야당도 끌어안아야 할 상대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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