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최인석 편집부국장 겸 경제부장

뜨거운 한여름 도심의 빌딩아래 그늘진 구석에 직장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다. 금연건물이 확산됨에 따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최근 대부분의 음식점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엔 식사후 식당 밖으로 줄지어 나와 흡연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흡연자들의 입지가 나날이 좁아지고 있는 방증이다.

담배의 원산지는 남미로 알려져 있다. 이 곳 원주민들이 즐겨 피던 담배는 콜롬브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서유럽으로 전파돼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우리나라엔 1600년대 초에 들어왔다고 한다.

예전에 담배는 권위와 힘의 상징이기도 했다. 담배엔 엄격한 기율과 예절이 잠재돼 있었다. 지위가 높거나 연장자 앞에서는 절대 피울 수도 없었다. 사랑채에서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호통치는 할아버지의 위엄은 가솔들을 숨죽이게 했다. 담배는 어른, 그것도 남정네의 전유물이었다.

힘들때 한대 피워물면 피로가 가시는 피로회복제이기도 했다. 아이들이나 아낙 등 여성들은 범접할 수 없었다. 이들이 만약 담배를 입에 댔다간 ‘돼먹지 못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담배를 피는 것에는 이같이 남녀노소 높은 장벽이 있었다.

하지만 담배의 그같은 위상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니 권위는 고사하고 이 세상에서 아예 추방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곳곳에서 분란을 일으킨다. 가정에선 ‘건강 나빠지니 끊어라, 못끊는다’ 식구들끼리 아우성이고, 아파트 이웃간에도 담배연기로 인해 얼굴 붉히는 경우가 잦다. 음식점에선 재털이 달라는 손님과 종업원이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자주 목격된다.

심지어 한 중학교에선 금연구역인 교내에서 흡연한 학생을 당국에 신고해 과태료 처분을 받게했다. 수도권 일부 대학은 캠퍼스뿐만 아니라 그 교문앞 거리를 지자체에 건의해 금연구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위엄은 물론 약재로도 쓰이는 등 귀한 존재였던 담배가 집에서나 밖에서나 애물이 된 것이다. 흡연권이 건강권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형국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담배가 국가재정에는 한몫하고 있다는 점이다.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과 부담금 수입이 한해 6조 8000억원 가량이다. 고속도로 교량 중 현재 가장 고액으로 평가되는 서해대교의 건설비가 6777억원(현재가치 7303억원)이었으니 담배연기가 매년 서해대교 10개는 세우는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부동산 관련 재산세가 총 8조원 가량이라니 담배의 재정적 비중은 알만하다. 하지만 흡연자들이 내는 세금은 대접을 못받는다. ‘죄악세(Sin-tax)’로 폄훼하기도 한다. 술과 도박과 같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대상에 부과하는 ‘부끄러운 세금’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산 담배 한 갑(2500원)에는 담배소비세 641원, 지방교육세 320.5원, 부가가치세 227.27원, 국민건강증진기금 354원, 폐기물부담금 7원 등 각종 세금과 부담금만 1550원으로 담뱃값의 62%를 차지한다. 비싼 담배나 싼 담배나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 세금과 부담금이 동일하다. 이에 따라 비쌀수록 세율이 낮은셈이라는 비난도 받는다.

‘담배와의 전쟁’이 담뱃불만큼 뜨거운 요즘 담뱃값 인상 목소리가 또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은 극명히 엇갈린다. 흡연자는 “서민만 죽는다. 나라 곳간을 민초의 담배연기로 채우려 하느냐”고 반발한다. 금연론자들은 “대폭 인상해 흡연율을 줄여서 담배연기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모두 정부가 언제, 어느수준으로 ‘죄악세’를 조정할지 초미관심이다.

이참에 애연가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돈버리고 몸버리고 질시를 받느니 담배 한번 끊어 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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