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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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가 대세다. 4명(H4)의 할배들이 지구촌 배낭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F4(꽃보다 남자·싱싱했던 젊은 배우들)에 못지않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모두 이른 살(평균 76세)을 넘겼고 도합 302세다. 나이 70이 넘은 백일섭이 막내다. 이들은 강호동·이수근이 보여줬던 '버라이어티 정신'보다 강하고 영리하다. 50년 넘게 연기자로 살아온 이들은 80세 황혼 문턱에 와 있다. 이들에겐 융통성 없고, 옛날 얘기 좋아하고, 주책없고, 비루먹고, 잔소리 잘하고, 쉰내 나는 ‘노인’들의 모습이 없다.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 퇴행성관절염을 딛고 용감무쌍하게 걸어가는 청년 할배들, 청춘보다 멋지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친구들이 해골파티를 해주던 날, 소나타 제2번 변B단조를 작곡했다. 자신의 죽음(39세·폐병)을 예견하듯 곡 제목이 장송행진곡이다. 알카포네는 매독으로 죽었는데, 그를 죽인 건 총이 아니라 음탕한 생활이었다. 영원한 슈퍼맨 조지 리브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휩쓴 대문호 헤밍웨이는 언제나 자살하는 연습을 했고 끝내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황영조는 마라톤의 고달픔을 토로하며 "죽어서 고통을 끝낼 수 있다면 차라리 죽고 싶다"고 했다. 삶과 죽음은 암전(暗轉)의 불꽃놀이다. 화들짝 피었다가 이내 꺼질 수도 있다. 왁자지껄한 ‘소란’을 피우지만, 누구나 잠시 왔다 가는 '소풍'인 것이다.

▶중국 후한 광무제 때 반란이 일자 ‘마원’이란 장수가 이를 진압하겠다며 호기롭게 나섰다. 마원의 나이 62세였다. 광무제는 "이 노인이야말로 노당익장(老當益壯)이군"이라며 감탄했다. 나이 들어서도 기운과 의욕이 넘친다는 '노익장'의 유래다. 하지만 요즘 환갑 진갑이면 ‘한창 때’고, 70세는 노인 축에도 못 낀다. 몸도 마음도 팔팔(수명 88세)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서유럽인들은 평균 37세밖에 살지 못했고, 20세기 초 미국인들도 45세가 죽음의 문턱이었다. 조선시대 왕들의 수명은 46세 안팎, 일제 강점기의 평균수명은 37.4세였다. 사오십 줄에만 들어서도 노인 대접을 받았던 이유다. 자고로 거죽은 늙는다. 그러나 가슴은 늙지 않는다. 그건 피가 뜨겁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꽃으로 피어난다. 시들거나 죽거나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 시작했을 때 죽음은 찾아오고, 그 죽음은 저녁노을처럼 쓸쓸하고 장엄하다. 폭풍우처럼 몰아닥치는 죽음은 어떠한 경우라도 억울한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는 건 어쩌면 욕망이다. 전성기로 돌아가려는 한줄기 욕망이다. 관절이 조금 아프면 어떤가. 밭은기침이 나면 또 어떤가. 지나간 날들이 후회막급하면 어떤가. 뚜벅뚜벅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냥’ 걸어야한다. '죽이게' 아름다운 날들을 '죽는 날'까지 신나게 살아야한다. 시간이 없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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