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주진석 충북본사 부장

교육의 중요성을 말할 때면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백년대계의 사전적 의미는 '먼 앞날까지 미리 내다보고 세우는 크고 중요한 계획'이다. 이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을 교육현장에서 그저 관행적으로 약방의 감초처럼 써도 괜찮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갈짓자 행보를 해왔다. 국가 백년대계가 5년 대계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이러다보니 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교육은 입시위주로 진행되고 학교는 입시학원의 역할을 한다. 때문에 창의성이나 인성을 키우고 사회 각 부분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육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단면은 대입제도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선발 방식은 광복 이후 최소 15차례 이상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5년을 넘지 않는다. 바뀌지 않은 것은 수험생들의 입시지옥 뿐이다.

1945년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자 국민적 관심은 문맹퇴치에 집중돼 대학입학 전형에는 무관심했다. 그래서 모든 대학입시에 대한 전권을 각 대학이 쥐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자격자의 입학허가, 부정입학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54년 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가 도입됐는데 일부 권력층의 자녀가 연합고사에 탈락했다는 이유로 시행 원년에 백지화됐다. 대학의 부조리를 제거하고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이 발단이 돼 퇴출된 것이다.

다시 나온 정책이 대학별 단독시험제와 무시험제(1955∼1961)이다. 하지만 이것도 두해살이로 끝났다. 이어 5·16군사정권에 의해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1962∼1963)가 등장했다.

이 제도는 국가경제발전 기치 때문에 실업계고 출신이 특히 우대됐다. 이때부터 대학 선발전형이 국가 통제에 놓이게 됐다. 결국 대학 자율성 침해 논란과 함께 교육기회균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여론으로 1964년 대학별 단독고사제로 전환됐다.

정부는 최소한의 지침만 마련했지만 일부 대학에서 매년 입시과목을 변경하는 바람에 진학지도 및 입시준비에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그래서 또 바뀌었다. 예비고사와 대학별 고사를 병행하는 입시제도가 등장한 것이다. 예비고사에 합격해야 각 대학별 본고사 응시자격이 주어졌는데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대학별 본고사 과목 채택은 과외 열풍을 일으켰다. 12·12사태로 정권이 또 바뀌자 1980년 최대 고교내신성적을 50%까지 반영하는 새 대입제도가 나왔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 번의 시행으로 끝났다. 1982∼1985년까지의 학력고사와 고교내신 병행은 수험생들의 극심한 눈치작전과 배짱지원이라는 문제를 돌출했다.

다시 나온 게 논술고사를 추가한 1986년의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는 입시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여론 때문에 2년 만에 폐지됐다. 다시 논술을 빼고 면접을 넣은 입시제도(1988∼1993)가 나왔고 1994학년도에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새로운 국가고사형태로 대치됐다. 하지만 학교 입시담당교사조차 헷갈려 하는 이런 조령모개(朝令暮改) 교육정책에 대한 관계당국의 반성은 전혀 없다. 사교육시장을 걱정하는 척하며 공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어달란다.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학생,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 탓을 한다.

우리나라 교육현장은 좌·우, 진보·보수의 이념 대결장으로 변했다. 교육수요자는 제대로 된 교육 하나만을 바라는데, 교육공급자는 교육수요자를 볼모로 잡고 자기 입맛에 맞는 교육을 하겠다고 배짱이다. 분명 교육공급자 중에는 교육수요자가 있을 것이고, 교육수요자 중에도 교육공급자가 있을 터인데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없는 듯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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