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선우 정치부 팀장

10년도 넘은 영화인 ‘두사부일체’가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 정웅인은 습관적으로 내뱉는 대사가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정웅인이 쓰던 표현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대전·충청권에선 유독 자주 일어난다. 몇 년 전에는 이명박 정권 당시 ‘세종시 수정안’이 있었고, 지금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수정안(기초과학연구원을 엑스포과학공원으로 이전)’이 그렇다. 2개 사업 모두 대선 공약이며 국가 미래를 위한 핵심 국책사업이었지만, 정권과 정부는 하루아침에 ‘수정안’으로 뒤엎으려고 했고, 또 하고 있다. 정권과 정부는 대전·충청권을 참 우습게 보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권과 정부가 하필이면 충청권과 연관된 국책사업들을 이렇게 뒤집어놓을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든다. 상대적으로 적은 충청 인구수 때문일까, 지역을 기반으로 둔 강력한 정당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역대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탓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마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이런저런 이유를 접어두더라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다른 데 있다.충청권과 관련된 각종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충청권 내부의 반응이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 당시를 회상해 보자. 이명박 정권은 수정안을 관철 시키기 위해 각종 회유책을 펼쳤다. 회유책 가운데는 충청권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기용해 내려보내 설득하는 작업도 있었다. 여기에 충청지역 일부 인사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수정안 찬성론을 펼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충청민심은 세종시 수정안에 따른 상처에 더해, 내부 갈등으로 심각할 후유증을 앓았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과학벨트 수정안을 놓고 벌이는 지역 정치권의 공방을 뜯어 보면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듯하다.(원안·수정안의 찬반 여부와 관계없다.) 야당에선 연일 원안 사수를 외치고 있고, 대전시와 여당 측은 일찌감치 수정안 찬성 입장을 보이며 극한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물론 여야의 입장이 다를 수 있고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건전한 여론 수렴과 정치적 의견 개진이라는 측면에선 여야의 충돌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충청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나 논의, 합의는 실종된 채 정치적인 갈등만 남았다. 대전시는 (그들의 주장대로) 미래창조과학부의 수정 제안을 덥석 물었고, 공론화 과정 없이 (대전시는 거쳤다고 하지만)찬성해 버렸다. 여당도 알아서 대전시의 입장에 동조했다. 야당은 ‘원안 사수’ 입장을 분명히 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안·수정안을 놓고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중립적인 세력도 없고, 중재역할도 없다. ‘충청을 위해 과연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가’라는 고민을 놓고 양측이 진지하게 대화를 하거나 할 시도도 없었다. 처음부터 양 측 모두 이런 마음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충청발전을 위해 정파를 떠나 현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만들어 놓은 충청권 시도지사·시도당위원장 협의회마저 스스로 파기시켜 버렸다.

타협할 주제가 아닐지라도 최소한 충청권 내에서 한목소리를 내기 위한 협의하고 서로 입장을 들어볼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충청권 내부에서조차 이렇게 서로를 불신하고 경쟁만 하려고 하니, 정권과 정부가 충청도를 깔보지 않을 수 있을까? 슬쩍 논란거리 하나 던져주면 알아서 갈라져서 난리를 치니 말이다. 지역 감정적인 발언일 수도 있지만, 영남이나 호남이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정권이나 정부가 이들을 상대로 감히(?) 시도조차 했을까? 라스베이거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충청도에선 자주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충청도는 매번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충청도 꼴이 참 우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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