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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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두환’이라고 쓰고 ‘29만원’이라고 읽는다.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전직예우도 하지 않으며 일고의 존엄도 갖지 않는다. ‘귀양’ 가기에는 제법 찬바람이 돌던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은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히고 백담사로 떠났다. 하지만 2년 유배동안 그는 뉘우치지 않았고, 세상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하산 후 첫 화두가 29만원이었다. 전 재산이 29만원이고, 자식들이 생활비를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전 씨가 17년간 납부한 금액은 전체 추징금의 24%인 533억원에 불과하다. 아직 내지 않고 꼬불친 돈이 1672억원이라는 얘기다.

▶전두환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면서 191명을 무덤으로 보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라는 죄목을 씌워 449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깡패 없는 세상을 만들려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어쩌면 본인이 삼청교육대감이다. 지금 검찰은 전 씨가 숨겨놓은 금고를 찾기 위해 안방 깊숙한 곳까지 금속탐지기를 들이대고 있다. 지하실 물탱크 뚜껑을 열어 휘휘 젓고, 하수구까지 들여다본다. 명색이 전직 대통령이지만 일개 잡범보다 못한 처지다. 사실 예전의 그는 결코 주머니에 돈을 챙기는 부류가 아니었다. 군 시절, 초급장교 후배의 신혼 셋방을 둘러보고는 자기 봉급으로 냉장고를 사다줄 만큼 정이 깊었다. 월남전 때는 검열 업무를 마치고 헬기에 올라탄 후 중대장에게 “야, 지금 이것밖에 없어”라며 지폐를 똘똘 접어 밑으로 던지기도 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화끈한 사나이였다.

▶29만원은 남자(1인당)들이 1년 동안 화장품을 구입하는 액수다. 아파트관리비로 한방에 날아갈 돈이고, 술 세 번 먹으면 끝장나는 돈이다. 20㎏ 쌀 5포대 밖에 사지 못하고 10명이서 회식 한번 하면 끝난다. 돌 반지 2개 사기에도 1만원이 부족하다. 양복 한 벌, 연탄 593장(개당 489원 기준), 계란 58판을 살 수 있으나, 1박2일 여름휴가를 가기에도 빠듯한 돈이다. 전 씨의 29만원은 어찌 보면 세상을 조롱하는 수치다. 29만원은 서민들에겐 눈물이지만, 전 씨에게는 1600억 비자금의 하루 이자도 안 된다.

▶꽃이 져서 잎이 난다. 그릇을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듯, 꽃이 져야 잎이 나고 새 생명이 돋는다. 때가 되면 권력도 진다. 우리는 전직대통령들이 하나 같이 부끄럽다. 전두환은 동생(경환), 김영삼(현철)·김대중(홍일·홍업·홍걸)은 아들, 노무현(건평)·이명박(상득)은 형님이 검은 스캔들을 일으켰다. 정치인의 3대 특기가 거짓말, 몰염치, 오리발이라지만 정말 이들 때문에 피로하다. ‘29만원’ 밖에 없다는 쩨쩨한 노인의 손에 29만원만 쥐어주고 모두 몰수하자는 말이 나돈다. 82세의 그가 당당해졌으면 한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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