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재필 편집부장

푸어(poor) 공화국이다. 하우스푸어는 집은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말한다. 평생 집 한 채 장만하고 일에서 은퇴한 무소득자도 하우스푸어다. 그런데 사실 하우스푸어는 부자들일 수도 있다. 아무리 빚을 졌다고 해도 집을 살만한 여력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하우스푸어는 156만 가구에 550만명을 넘는다. 이들이 은행권에 갚아야할 원금과 이자는 80조원이다. 집을 경매에 넘겨도 대출금을 못 갚는 이른바 '깡통주택' 보유자도 전국적으로 19만명, 금액으로는 13조원에 달한다.

워킹푸어는 직업은 있지만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자신이 '푸어족'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득은 그리 낮지 않지만 항상 가계 적자로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월급을 받아도 항상 가난한 이유는 적은 연봉 때문이다. 또 재테크를 못하거나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것도 원인이다.

실버푸어는 가난한 노인들로 10명 중 3명은 늙어서도 일을 한다. 해외여행 등 과소비로 빈곤한 쇼핑푸어, 자녀 양육비로 빈곤한 베이비푸어, 과다한 교육비 지출로 가계가 어려운 에듀푸어, 비싼 결혼비용 때문에 가난해진 웨딩푸어, 의료비 지출이 많은 메디푸어, 무리하게 고급차를 구매해 생활고를 겪는 카푸어도 있다.

15년 전 서울로 이사 갔을 때 내 수중엔 2500만원밖에 없었다. 집을 사기는커녕 전셋집도 못 들어갈 판이었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다 쓰러져가는 변두리 빌라 전세를 구했다. 당시 서울의 아파트들은 보름 새 1억원이 뛰기도 했고, 13평(42.9㎡)짜리가 7억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들은 1억원의 대출을 받아 3억짜리 아파트를 재테크용으로 장만했다. 아파트는 주인도 모르게 1억씩 뛰었고, 다시 그 돈이 종자돈이 돼 다른 아파트를 구입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였다.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뭉칫돈을 빌려 아파트를 구입했다. 서울에서 재테크에 실패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자 갚기에 허리가 휘고 있다.

월급을 타도 가난하고, 월급을 타도 만져본 적이 없다. 매월 은행과 카드사에서 알아서 털어가고, 알아서 분배해간다. 대출이자를 갚는 날이면 전화 받기가 겁난다. '이자납입이 지연돼 타 기관 연체등록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를 들을 때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제 날짜에 대출이자를 갚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도 '푸어족'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빚더미는 더 커진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집’은 ‘짐’이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빚진 종'이다. 하우스푸어는 가족과 편히 지낼 내 집 한 칸을 소망하는 소박한 꿈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기댄 욕심까지 덧입혀져 한국의 상처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 정권이 바뀌면 그래도 오르겠지”라는 기대감은 허상이다. 이 시대는 30년도 못가서 헐어버릴 집을 가지고 울고 웃는 짧은 눈과 경박한 정서를 품고 있다. 몸은 사람의 일생을 지탱하는 36.5도의 훈기 넘치는 집이고 영혼이 떠난 육신은 그저 폐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욕심의 부피가 커질수록 희망의 깊이는 얕아지는 법이다.

사실, 아파트에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다. 텃밭을 가지고 싶고 사람들을 마당으로 불러 모아 삼겹살 파티도 하고 싶다. 하지만 헛꿈이다. 빚으로 마련한 성냥갑 같은 공간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풍찬노숙 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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