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종교를 초월하여 국민적 존경을 받던 성철(性徹) 스님에게는 유일한 혈육이 하나 있었다. 스님이 출가를 하기 전 낳은 딸이다. 그 딸이 '아버지'라고 불러 보기도 전에 스님은 입산, 수도승이 되었다.

13살이 되던 해 아버지 성철스님이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찾아 갔는데 스님은 딸을 보자마자 '가라!'는 냉정한 한마디를 던지고는 사라졌다. '아버지'를 불러 보지도 못하고 부녀의 인연은 단절되고 만 것이다. 그 충격은 설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딸은 그 후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삭발하고 스님이 되었다.

법명은 불필(不必). 지금은 따님도 70대 중반을 넘었고 성철스님을 '아버지'가 아닌 '스승'으로 받들며 먼 거리에서 살아야 했다. 아버지 성철스님이 돌아가시고 다비식(불교에서 화장을 하는 예식) 때는 3배가 아닌 9배를 올렸다고 회고록에 썼다. 큰 스님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모두를 하나로 녹여주는 것이었으리라. 비록 세속적인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긴 세월 살았지만 스승으로서의 성철스님의 가르침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 보지 못한 혼혈가수 인순이의 경우도 그렇다. 그녀는 1957년 경기도 포천에 있는 미군부대 소속 흑인병사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곧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딸은 물론 어머니와의 인연도 끊었다. 그래서 인순이는 혼혈아로서 혹독한 차별을 받아가며 외롭게 살아야 했고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외로움과 가난을 이기고 팝가수로서 성공하였고 마침내 2008년 미국의 명문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 때 인순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자리가 아버지와의 '화해'의 자리가 되었다며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라고 하여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하여 MBC '나는 가수다'에서 많은 사람을 울렸던 '아버지'라는 노래가 탄생을 한 것이다.

어쨌든 앞서 성철스님의 따님 불필스님이나 혼혈가수 인순이가 보여준 혈육의 정을 뛰어 넘는 '아버지'에 대한 존재 - 그에 대한 의식은 우리들 가슴에 깊이 녹여드는 것이 있다.

최근 가정에서 대화 없이 살아온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한 사건이 서울에서 있었다. 기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탈세를 하고 부당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에 대한 처벌이 미진할 경우 제2, 제3의 비리도 폭로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물론 아버지는 아들을 회유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왜 아들은 아버지를 법에까지 고발해야만 했을까? 그토록 아버지가 미웠을까? 인순이처럼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그 젊은 아들은 훌륭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인간의 가장 핵심적 윤리관계에서 보면 분명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비록 고발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부담스럽고, 심지어 증오스러운 관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널려 있다. 부모를 방기하고 기껏 요양원에 집어 던지다시피 하는 자식들, 자식들에게 더 짐이 되기 싫어 자살하는 아버지들,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형제끼리 피나는 싸움을 하는 자식들, 늦게까지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아버지들…. 이래저래 한국의 아버지는 외롭다. 힘들다.

갈등과 미움이 갈라놓은 아들과 아버지…. 서로 '화해'의 대화를 나누고 '용서'의 따뜻한 손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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